질문 감사합니다.
간단히 환단고기의 전래 과정에 대해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환단고기는 아시다시피 삼성기 상하, 단군세기와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묶어 엮은 책입니다. 환단고기를 엮은 운초 계연수는 평안도 선천 사람으로 독립운동단체인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동하다가 1920년 일본 밀정의 밀고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압록강 변에 시체가 훼손되어 버려지는 참화를 겪습니다. 그것을 현장에서 지켜본 당시 14세의 이유립 선생(1907~1986)은 토막난 운초의 시신을 수습되는 광경을 직접 지켜보고, 민족사를 되살려야겠다는 꿈을 품습니다.
운초는 환단고기를 묘향산 단굴암에서 편찬하여 1911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이 때 홍범도와 오동진의 도움으로 출간할 수 있었음을 범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후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탑본하여 1917년 서울의 단군교당으로 보낼 때, "환단고기는 다음 경신년(1980)년이 되거든 세상에 내 놓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늘날 환단고기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유립 선생에 의해서 입니다. 이유립 선생은 어려서 계연수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던 아버지 영향으로 역사에 눈을 떴고, 단학회에서 주관하는 배달의숙에서 계연수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환단고기, 홍익사서를 전공했습니다. 이유립은 1946년 신탁통치반대에 대한 격문을 '태극'지에 실었다가 구속되었는데, 옥에서 풀려나면서 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했습니다. 그후 단학회를 단단학회로 개칭하고 대전시 은행동 셋집에서 역사 연구과 강연에 전념했습니다. 이 때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겪었는지 냉기 없는 방에서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디거나 일주일을 꼬박 굶기도 하는 고통 속에서도 민족사학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본래 환단고기가 몇 권 발행하지 않은 탓에 별로 판본이 없어서, 이유립 선생은 1949년 오형기에게 필사를 시켰는데 오자도 많았고, 허락없이 발문까지 덧붙여 썼습니다. 1979년 7월에는 단단학회 회원이었던 조병윤이 이유립 허락도 없이 오형기 필사본을 출판했습니다. 이로부터 판권 문제 등이 생기게 됩니다. 단단학회는 10월 오형기 필사본의 오자를 바로 잡아 새로 출간을 하고자 하였으나 출간비가 없어서 1983년에 와서야 배달의숙본 100권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 후 이본을 여러 도서관 등에 기증하였는데 당시에는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았습니다. 계연수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세상에 환단고기를 널리 알리고, 민족 주체사관을 확립하는데 한평생을 바친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국사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가 일본 정계, 재계의 적극 지원 하에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를 입수해서 일본어로 번역을 했는데, 한민족 시원 역사가 유대족의 역사로 시작된다는 둥, 환단고기 본래의 역사관을 크게 왜곡하였습니다. 이 일본판 환단고기 번역본이 다시 역수입되어 들어오면서 역사학계, 대중계에 널리 주목을 받게 됩니다. 가지마 노보루는 박창암 장군의 소개로 이유립 선생을 찾아와 이유립 선생이 한글로 번역해 갖고 있던 환단고기를 빌려가 참고자료로 쓴 후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환단고기 위서론은 환단고기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원본과 필사본이 사라진채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 두 본만 전하고 있음에 기인합니다. 또 비전문가의 손을 거쳐 필사되면서 본문과 주해가 혼동되기도 하고, 근대적 용어가 사용되면서 진실성이 의심받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계연수 선생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둥, 국가, 문화, 평등, 인류 등의 용어가 쓰인다는 이유로 이유립이 자작했다는 등의 주장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동방 한민족의 역사관의 기반을 이루는 '신교의 삼신문화'에 담긴 우주관, 신관, 인간관, 예술관, 역사관 등을 전혀 모르는 위인의 소견에 불과합니다. 일부 술어와 연대고증의 문제가 있을 지라도 인류의 시원사, 한민족의 국통맥, 한문화의 구조와 대세를 밝히는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환단고기의 수정은 의도적인 첨삭이 아니며 누구의 손에서도 꼭 이뤄져야만 하는 보정 작업으로 인식해야 하며, 그 보정도 미미한 정도에 그칩니다. 아시다시피 인류의 각 주요 경전들은 수백, 수천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보정작업을 거쳐서 오늘에 이른 것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주역은 물론이고, 도덕경, 사서삼경, 황제내경도 역사 속에서 질못 기록된 연대, 인물, 장소 등이 수정, 보완 가필되면서 지금에 내려왔습니다.
결코 날조하여 만들어질 수 없는 내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고조선 흘달단군 5년의 오성취루 현상을 컴퓨터 시물레이션 결과 실재했던 사실임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서지학적 검토와 연구가 계속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앞으로도 열린 마음으로 민족의 본래의 뿌리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밝혀주는 사서로 계속해서 연구해가야 할 책입니다.
지금 상생출판에서는 삼성기를 필두로 단군세기, 북부여기가 출간되었고 태백일사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증산도 안경전 종정님께서 직접 한민족 신교의 올바른 관점에서 해석을 하셨고, 풍부한 역사적 사료에 의한 주석, 화보가 내용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 책을 읽으면 환단고기를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또 이유립 선생의 직계 제자인 양종현씨가 쓴 이유립 선생의 평전, "백년의 여정"을 구입해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풀리지 않는 모든 의문점이 풀릴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