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

개밥그릇/잡동사니 2012. 5. 26. 20:06

백면서생, 그리고 지모의 명장 ‘육 손’

               최용현(수필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격파하여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람은 오의 대도독 주유이고, 촉장 관우가 지키는 형주를 지략으로 빼앗은 사람은 여몽이다. 주유 노숙 여몽에 이어 오군의 최고 사령관에 오른 사람은 육손이다.

   육손(陸遜), 자는 백언(伯言). 강동 호족의 자제로 키가 여덟 자에 두뇌가 명석했고, 얼굴 피부가 옥처럼 고왔다. 약관 20세 때부터 손권의 휘하에서 일을 했는데, 손권은 재기가 뛰어난 그를 형 손책의 딸과 혼인시켜 자신을 보좌케 했다.

   육손이 삼국지에서 처음 활약하는 것은 명장 여몽이 형주를 빼앗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때이다. 형주지역 사령관인 촉장 관우가 주요 요새마다 봉화대를 세우고 경계를 철저히 하자, 아무 계책도 쓸 수가 없게 된 여몽은 병이 나서 드러눕고 말았다. 이때 여몽의 고민을 간파한 백면서생 육손은 여몽의 병상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장군께서는 병을 핑계로 물러나시고 그 대신 이름 없는 장수를 사령관에 위촉토록 하십시오. 그러면 관우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위 공략에 주력할 것입니다. 그때 기회를 보아 단숨에 형주를 뺏어버리면 됩니다.”

   그를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절묘한 계책을 내다니. 깜짝 놀란 여몽은 그의 계책대로 병을 핑계로 사령관직에서 물러나고 대신 그 자리에 육손을 임명토록 건의했다. 오군 사령관에 풋내기 육손이 임명되자, 관우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주력부대를 모두 위나라의 번성을 공략하는데 투입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한 여몽은 육손과 함께 정병 3만을 이끌고 형주에 진격, 순식간에 형주성을 점령하고, 나중에는 관우까지 사로잡아 목을 베는 개가를 올린다.

   그 후, 촉주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국적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오로 쳐들어왔다. 서전에서 크게 이긴 유비는 승세를 타고 계속 진군해왔다. 손권은 마흔 살의 육손을 오군의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침략군을 막아내게 했다. 이때 육손은 작은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면서도 반격은 하지 않았다. 모두들 육손을 겁쟁이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느긋했다.

   “기다려라. 섣불리 정면으로 맞붙으면 승산이 없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적이 피로해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 머지않아 그때가 올 것이다.”

   육손은 수비를 강화하면서 촉군을 계속 깊숙이 유인했다. 겨울에 시작한 전쟁,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드디어, 폭염을 견디지 못한 촉병들은 이릉 숲속에 수백 리에 이르는 장사진(長蛇陣)을 쳤다. 모두 창칼과 갑옷을 내팽개친 채 시원한 그늘을 찾았다. 때가 왔다고 판단한 육손은 드디어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지금 촉군은 지치고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적을 섬멸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모두 풀섶에 불을 붙여 바람을 등지고 촉군의 진채를 향해 던져라. 총공격이다!”

   불길은 숲을 휩쓸며 촉군의 진채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불에 타죽은 자, 도망치다가 오군의 창칼에 찔려 죽은 자…. 촉군의 시체가 온 숲을 뒤덮었다. 유비는 겨우 수백 기를 이끌고 도망쳤다. 육손이 이끄는 오군의 완전한 승리였다.

   이 전투가 바로 이릉대전이다. 조조와 원소가 강북의 패권을 놓고 맞붙은 관도대전, 주유가 조조의 백만대군을 화공으로 격파한 적벽대전과 함께 삼국지의 3대전투에 꼽히는 바로 그 전투인 것이다.

   육손은 성급하게 싸우려는 선배 장수들을 잘 다독거리면서 ‘이일대로(以逸待勞)’ 즉,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공격하는 전법을 완벽하게 구사했던 것이다. 한 평생 군사를 부리며 전장에서 세월을 보낸 백전노장 유비는 풋내기 백면서생에게 무참히 패하여 백제성으로 피신했다가 화병을 얻어 죽고 만다.

   이릉전투의 영웅 육손은 손권에 의해 후(侯)로 봉해져서 오의 군권을 한 손에 쥠은 물론, 전략요충지인 형주목까지 맡았다. 오에 바야흐로 육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오군 최고사령관 육손이 제갈근과 함께 위 공략에 나섰을 때, 육손의 작전서신을 가지고 손권에게로 가던 사자가 위군에게 사로잡히는 바람에 작전계획이 누설되고 말았다. 이제 속히 철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육손은 군사들에게 들판에 나가 콩과 보리를 심게 했다. 자신은 장수들과 함께 바둑을 두기도 하고 궁술대회를 여는 등 전혀 철군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때 제갈근이 찾아와 왜 빨리 철수를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육손이 대답했다.

   “무릇 군사를 철수하려면 적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오. 섣불리 군사를 물리면 적군이 기세를 타고 쫓아오기 때문에 잘못하면 전멸당하고 마는 법이오. 한바탕 적을 몰아붙인 뒤 감쪽같이 군사를 물려야 할 것이오.”

   육손은 전군에게 공격준비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적병들을 거세게 몰아붙여 꼼짝 못하게 한 뒤, 쥐도 새도 모르게 전군을 철수시켰다. 병법의 작용과 반작용, 허와 실을 교묘히 응용한 기민한 작전이었다.

   오군이 물러간 것을 며칠 뒤에야 안 위주 조예는 ‘육손의 군사 부리는 솜씨가 옛 손자나 오자에 비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구나. 그가 있는 동안은 오나라를 쳐서 없애기 어렵겠구나!’하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그 후 오의 조정에서는 후계자 문제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태자가 일찍 죽자, 오주 손권은 후처소생의 맏이를 태자로 삼아놓고 둘째를 노왕으로 봉하더니, 노왕을 태자보다 더 총애했다. 조정은 태자파와 노왕파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는 등 국론이 심하게 분열되었다.

   이때 형주에 있던 육손은 승상(丞相)의 중책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태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손권에게 충심이 담긴 상소를 올렸다.

   “마땅히 태자에게 무게를 더하여 노왕과는 차별을 두어야 합니다.”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노왕을 총애하던 손권의 귀에는 옳은 말로 들리지 않았다. 이때 타격을 받은 노왕파에서 육손을 모함했고,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손권은 육손을 문책하는 관리를 잇달아 형주로 보냈다.

   울분을 참지 못한 육손은 시름시름 앓다가 그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예순 셋, 오군 최고의 명장치고는 참으로 어이없는 최후였다.*

http://blog.daum.net/weolsan/16006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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