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2 - 네오에게 던져진 세가지 철학공격

개밥그릇/잡동사니 2013. 5. 21. 16:59

매트릭스의 믿음을 기독교적인 믿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건 니체가 말한 "인간의 문화들이 저마다 쏟아내는 다양한 [선과 악의 언어들]은 진실이나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의지의 산물"이라는 말과 일면 상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트릭스에서의 그 믿음들은 모두 선택의 근거입니다 1편에서 시온의 접속 메인코드를 캐내기 위해 에이전트에게 취조당하는 모피어스를 죽이지 않고 구하러 가는 니오가 모피어스를 선택한 것은 그냥 믿기 때문입니다 2편에서 트리니티와 시온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나오는데 이전에 오라클은 니오에게 열심히 선택과 믿음에 대해서 강의했습니다 3편에서도 시온으로 가지 않고 기계도시로 가는 선택을 하는 근거도 믿음입니다

자신이 지금 먹고있는 오트밀이 사실은 오트밀 맛이 아니라 기계들이 오트밀 맛을 몰라 치킨 맛으로 오트밀이라고 우긴건지도 모른다는 네브라스카 대원들의 대화는 우리의 인식이나 이성이 어떤 근거도 가질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근거는 믿음입니다

컴퓨터가 1과 2의 배열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듯 인간은 선택과 믿음이라는 두 가지 코드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성이나 인식은 선택과 믿음의 조합과정에서 생긴것일 뿐이고 그것들을 분석하면 끝에 남는 것은 선택과 믿음이라는 겁니다

"A와 B중에 뭘 할래"
"A할란다"
"뭐 땜에"
"믿으니까"

여기서 대화는 끝납니다 믿는다는데 더 이상 무슨 얘기가 오갑니까 모피어스 말대로 길을 아는 것과 길을 찾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길(해답)을 모릅니다 언제나 그 근거가 충분하지 않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합니다

워쇼스키 말은 믿으면 이루어지리라가 아닙니다 선택과 믿음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선택과 믿음을 조롱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 삶의 본질이 그건데 과학이나 이성의 이름으로 조롱해봤자 누워서 침뱉기란 말이죠




네오에게 던져진 3가지 철학적 공격


어떤 기사는 일편 만큼 철학적 재미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고 추측으로 쓴 기사 같다 이편은 일편이 제기한 철학적 문제를 더 전개 심화 시킨다. 그 과정은 어색하지도 않고 또 이해도 어렵지 않다.

매트릭스는 네오가 적들의 물리적 철학적 공격을 물리쳐가는 과정이다. 스미스의 물리적 공격과 프로그래머들과 주변 사람의 철학적 의문제기가 그것들이다. "매트릭스에 사는 것과 밖에서 사는 것이 무슨 차이인가" 이것이 그들이 제기하는 철학적 공격이다

첫번째는 같은 편인 시온의 의원에게서 나오는데. "우린 어차피 기계에 의존한다"이다. 이말은 기계에 덜 의존하는 시온이나 아주 많이 의존하는 매트릭스나 그 정도의 차이인데 어디가 낫다는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여기에 네오의 대답은 "우리는 필요할 때 기계를 끌(off) 수 있다"이다. 

두번 째는 키메이커를 찾으러 가서 프로그래머에게 받는다. 인간이란 자기가 무얼하는지 모르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저 화학반응에 의해서 움직이는 유기체 일뿐인데 그것이 매트릭스를 살든 현실을 살든 무슨 상관인가. 그러면서 네오를 공격하길 너도 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고 오지 않았느냐라고 한다. 여기에 네오는 대답이 없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프로그래머의 마누라가 해준다. 인간이란 그렇게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을 아주 쉽게 장악한 파워를 가진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마누라에게 배신당하는것은 프로그래머의 인간 이해가 잘못됬다는 걸 이야기 해준다. 

세번째 공격은 설계자이다
그는 오늘 찾아온 네오가 6번째라고 얘기해준다. 네오와 설계자를 둘러싼 화면에는 이전에 찾아왔던 네오들의 모습이 비친다. 그 때마다 기계들은 시온의 인간들을 멸망시켰으며 네오는 매트릭스에서 지정된 남자 15명과 여자7명(정확하진 않음) 허락받아 다시 시온을 건설하고 그 시온은 다시 네오가 온다는 전설을 믿고 또 정말 네오는 나타나고 그런식으로 5번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네오 조차도 프로그램 된 거란 말이다. 이 부분은 강렬하지만 솔직히 내가 부족해서 정리는 안된다. 어쨋든 설계자와 예언자인 오라클은 선택의 문제라고 이야기 해준다. 

매트릭스 2에서는 현실과 매트릭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예언자 오라클은 매트릭스의 프로그램들 운명을 설명하는데 그 말은 오히려 현실도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 아니랴라는 말로 들린다. 설계자가 계속해서 매트릭스 버전에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up해가는 과정과 현실이 도대체가 막막한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가는 것은 흡사하다. 

현실도 프로그램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면 네오의 능력이 현실에서도 통한다해도 이상하지 않다. 마침내 네오는 현실에서 실제의 기계들을 염력을 물리친다.



설계자의 딜레마(메트릭스의 완벽한 해설)


매트릭스는 제작자 조엘실버의 말대로 인류를 구원하는 영화다. 네오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적들과 맞선다. 허나 물리적 전쟁만으로는 매트릭스의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의외로 견고한 메트릭스의 존재철학(이유)도 깨부숴야한다. "네오는 물리적이고 내면적인 여행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한다." 이건 키아누가 인텨뷰에서 한 말이다.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내준건 사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논리적 패배 때문이었다. 저항은 할 수 있었지만 저항할 논리가 없었다. "조선이 발전할려면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것은 당시 우물속 대한제국 대신들에겐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논리였다. 네오의 답답함과 조선대신의 답답함은 내용은 다르지만 설정은 같다. 철학적 구원없이는 물리적 구원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매트릭스로 부터 인류를 구원하려는 네오에게 제일 먼저 철학적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시온의 원로의원이다. 시온의 인류가 매트릭스의 인류와 달리 기계를 통제한다고 믿고있지만 그 통제라는 것이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네오의 말처럼 전원을 끄는게 통제라한다면 그렇다면 그 후에는 어쩔텐가 배기와 발전 전기는 누가 공급할 것인가. 결국 인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통제가 과연 진짜 통제일까. 매트릭스의 인류도 시온의 인류도 선택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트릭스 밖에 산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자랑이겠는가. 

예언자인 오라클은 네오의 선택을 훤히 꿰고 있다. 당신이 나의 선택을 잘 알고 있는데 나의 선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묻는 네오에게 오라클은 선택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한다. 이건 프로그램을 꿰뚫고 있는 오라클의 말이기도 하고 인생을 아는 지혜로운 자의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선택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노무현을 뽑은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선택을 이해하느냐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니까 찍을 손을 자르겠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거다. 네오는 인류를 구원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네오는 선택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 해야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인류는 일곱번 째 네오를 다시 맞아야하는거다

키메이커를 억류하고 있는 메로빈지언은 가장 직설적이다. 그는 선택은 일부의 힘있는 자의 것으로 대부분의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란 그저 화학반응에 의해서 움직이는 유기체 일뿐인데 그것이 매트릭스를 살든 현실을 살든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인과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결국 기계와 다름 없다는 것이다. 기계는 무기체기계이고 인간은 유기체기계인것이다. 그러나 막강한 파워로 자신의 의지대로 주변 인간들을 움직이고 규정하던 메로빈지언은 믿었던 마누라에게 배신당하는 꼴을 보이면서 그의 논리가 말짱 궤변이었음을 드러낸다. 인간이란 그렇게 쉽게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원인과 결과에 움직이겠지만 우리는 그 원인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원인은 쉽게 추정할 수 없고 결과는 항상 같지가 않다. 기계는 프로그래밍 해도 되지만 인간은 프로그래밍 되지 않는 것이다. 네오에게 트리니티에게 해줫던 키스와 똑같은 사랑의 키스를 해달라고 하는 메로빈지언의 아내는 원인은 다르지만 같은 결과를 원하고 있다. 이것이 기계적으로 또는 프로그램적으로 처리가 가능한 것일까. 

키메이커는 자신이 존재목적을 잘 알고 있다. 네오에게 열쇠를 주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건 그가 프로그램이라는 증거다. 인간은 존재 목적이 없다. 이건 인간의 존재가 도구로 쓰이지 않는다는 말도 되지만 존재목적이 없는 존재가 무슨 필요인가라는 말도 된다. 존재 목적이 없는 놈이 왜 사는가? 존재 이유도 모르는 놈이 왜 살아야 하는가? 여기서 워쇼스키 형제는 동양철학의 우월성을 얘기하는것 같다. 항상 존재목적을 추구해온 기독교가 프로그램의 키메이커와 뭐가 다른 존재인가. 메트릭스의 프로그램이 될려고 노력한게 기독교가 아닌가라고 묻고 있는거 같다. 인간은 존재 이유가 없다 존재 목적이 없다 동양은 그걸 당연히 받아들였다. 

설계자는 이번에 찾아온 네오가 6번째라고 얘기해준다. 네오와 설계자를 둘러싼 화면에는 이전에 찾아왔던 네오들의 모습이 비친다. 그 때마다 기계들은 시온의 인간들을 멸망시켰으며 네오는 매트릭스에서 지정된 남자 15명과 여자7명(정확하진 않음)을 허락받아 시온을 건설하고 그 시온은 다시 네오가 온다는 전설을 믿고 또 정말 네오는 나타나고 그런식으로 5번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건 뭔 말인가 네오 조차도 프로그램 된 거란 말인가. 중요한건 네오가 프로그램 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들의 매트릭스가 계속해서 실패해왔다는게 중요한거다. 왜 실패했을까? 인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대문에 어떤 변수를 넣어도 인간을 매트릭스 안에 넣어 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하는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싸움은 인간이 이기게 되어있다. 
인간은 매트릭스에 수용할 만큼 쉽게 규정되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 실패한 네오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5번이나 재부팅한 매트릭스는 절대 오류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인과론으로 존재목적론적으로 캐치할수 없다.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설계자는 계속해서 오류를 반복할 뿐인거다. 인간을 매트릭스에 집어넣는 다는 건 환상이다. 

그러나 시온의 인간들은 현실에 나왔음에도 매트릭스를 잊지 못한다. 그렇다 완벽한 매트릭스를 만들려는 것은 설계자만의 꿈이 아닌것이다. 인간을 규정하고 창조자를 만들고 싶어한것은 인류의 오랜 시도였다. 서구 기독교의 이상은 사실 완벽한 매트릭스를 만드는 것이였다. 왜 시온의 동굴에서 고대 교회의 고딕체가 나오고 초기 기독교 신자의 모습을 한 인류가 나오겠는가. 또 군무는 무엇인가 이건 기독교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그동안 서양을 속여온 종교인 기독교라는 메트릭스에 대해 워쇼스키 형제가 조롱하는 것이다. 함부로 인간을 규정하고 거짓 창조자를 만들어낸 기독교에 보내는 환멸인것이다. 

마침내 네오는 현실에서 실제의 기계들을 염력으로 물리친다. 디지털 세상에서 초능력을 발휘한 네오가 아날로그 세상과 호환이 되기 시작한거다. 아날로그 세상이 디지털에서 거의 완벽하게 재현된다는건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지 원리는 같다는 말이다. 그럼 디지털에서 초능력을 쓸 수 있다면 아날로그에서 초능력을 쓰는게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만약 설계자가 매트릭스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다면 그는 매트릭스 안의 인간을 통제하지 못할지 모른다. 아날로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디지털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이상할게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매트릭스가 가상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 되는거다. 몸만 코쿤에 있지 의식은 독립된 존재가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기계는 어떤 식으로도 인간을 통제하지 못한다. 완벽하게 재현할수록 인간의 불규칙성을 재현하게 되고 그건 아날로그나 마찬가지인 세상인거다

어떤가 이보다 명쾌한 매트릭스 2의 해설을 보신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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