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르는 한민족의 해3. 박수 무당인 환웅, 단군의 무당춤으로 현대병의 예방과 치료.

민족문화대학/역사 탐구 2015. 4. 22. 22:43


다시 떠오르는 한민족의 해3. 박수 무당인 환웅, 단군의 무당춤으로 현대병의 예방과 치료.
 

 
1.들어 가는 말 
2. 풍백(風伯), 운사( 雲師), 우사(雨師)는 악공 이었다.
3.박수무당이 천시되게 된 이유
4. 자기것을 천시 하면 나라를 빼앗긴다.
5. 춤과 음악은 대체의학이 아니라 정통 의학이었다.

6.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파동으로 이루어 졌다. 
7. 샴(sham)은 생명이다.
8. 몽골의 무당춤 
1)세습무(世習巫)
2)강신무(降神巫)

9. 堂狗三年 作風月이란 말의 뜻은?
10. 한국에만 대웅전이 있는 이유.
11. 남근이 노골적으로 여음에 삽입 하고 있는 서낭나무
12. 남근 형상의 웅상(山像雄常) 
13. 사물노리와 난타가 세계적으로 환영을 받는 이유.

14. 사람은 태어나기 전 부터 두드리고 춤추는 존재였다.
15. 결론

1) 종교? 믿음의 줄을 잘 서라.
2)자신의 운을 자신이 만드는 해오름 관법 
3) 만병통치 밝달춤.
 
1. 들어가는 말 
 무엄하게도 환숫( 환웅) 밝달임금(단군)이 박수무당이라니?
 우선 박수무당이 왜  그리 천하다고 생각 하는지 부터 말한다. 
 박수는 搏手로 손뼉을 치는 것이고 남무(男巫)의 우리말은  화랭이 이며 화랭이는 환앵이 >화랭이 이고 앵이는 송판결 같은데 결이 뭉쳐진 옹이  왱이 앵이 등이다. 그렇다면 화랭이는 환한 부족(桓族)의 중심체이다. 
 
 이 환숫께서는 하늘의 섭리, 즉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라 인본주의를 세우신 하느님의 명을 받고 대략 3 천의 무리와 함께 앗선(첫조선) 개국지로 내려오신다. 이때 환숫께서는 특별히 풍백(風伯), 운사( 雲師), 우사(雨師)라는 세분과 함께 오신다. 
 
2. 풍백(風伯), 운사( 雲師), 우사(雨師)는 악공 이었다.
 이 세 분들은 기록상 환숫과 같이 내려와 바람이나, 구름, 그리고 비나 다스리는 신 정도로 알고 또 그들이 인간의 곡식, 왕명, 질병, 형별, 선악 등 다섯 가지 정사를 맡겨 인간사 360여 가지를 주관하게 한다고 환단고기 등에도 쓰여 있느니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다. 
 또 혹자는 이 三師가 바로 환숫이 첫조선 개국지로 내려올 때 하느님으로 부터 받아 가지고 내려온 天地人천부인 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옛 기록을 신비하게 적으려는 사서일 뿐 논리상 말이 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천부경이고 이는 자연 섭리를 따르는 교훈이다.
 환숫께서는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천제를 지냈을 것이고 이 천제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금 제사 형식이 아니라 우선 자연의 섭리대로 추는 춤 이었을 것인데 이 춤이란 악사가 없으면 춤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풍백은 징 잡이였을 것이고 운사는 북잡이 였을 것이며 우사란 꽹가리잡이 였을 것이다. 
 즉 당시만 해도 신석기 문명이 청동기 문명으로 바뀔 때이니 징이나 꽹가리는 있었을 것이고 북은 나무통에 쇠가죽을 둘러 씌운 것이니 당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징과 북과 꽹가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환숫이 천신인 해 이고 곰네가 누리인 지신이라면 햇빛과 누리가 교합하여 누리에 생명을 키우려면 절대 필요한 것은 바로 비(雨) 인데 비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듯이 먼저 구름이 있어야 하고 그 구름은 바람이 몰고 와야 한다. 
 따라서 풍백(風伯)에 마지라는 맞伯자를 쓰는 이유도 바람이 먼저 이기 때문인데 이 바람의 악사가 징잽이 라는 것은 지금 풍악노리로 볼때 당시 제천 의식을 치르려면 먼저 사직의 신호로 징을 쳤을 것으로 보며 그 징 소리는 바람처럼 끊어질듯 말듯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운사(雲師)가 북 이라는 것은 북은 그 만든 것부터가 나무통에 구름이 덥히듯 가죽을 씌웠으며 그 소리 또한 구름이 덮힌듯한 소리를 내기 때문이고 이렇게 구름이 끼면 보통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오는데 꽹가리 소리는 꼭 천둥번개와 같은 소리를 내고 또 소나기가 올 때는 꽹가리 소리 같기도 하다.
 
 따라서 환숫의 무리가 지신의 무리와 천제를 지내던 방법은 이 세 악사들의 연주에 따라 손뼉을 치며 춤을 추었을 것인데 이때 환숫뿐 아니라 같이 천제를 지내던 모든 사람들도 하다못해 나무도막 두개를 두드렸을 거나 손뼉을 쳐 가며 춤을 추었을 것이니 환숫, 밝달 임금을 박수무당 이라 하게 되었던 걸로 보여 진다.
 
여기서는 사물노리의 장구가 빠졌고 장구 소리는 잔 비가 오는것 같기도 한데 이 장구는 그 만드는 방법이나 연주 하는 방법이 고급 악기이기 때문에 후세에 만들어져 지금 사물 노리가 된 것으로 본다.
 
3.박수무당이 천시되게 된 이유
 지금 국어사전에서 화랭이를 찾아보면 남자 무당인 男巫로 나온다.
 그렇다면 어음상 화랭이는 환앵이 였을 것이고 환은 환이 옹이진것, 앵이 진것, 즉 환족의 뭉처진 중심체이며 이것을 한자로 적으면 花郞이 된다. 
 
 태양의 우리말은 해 이다. 이 해는 하+ 우리말에 거의 붙는, 즉 갑돌이 갑순이등 하는 접미사 '이' 가 붙어  해 이니 해의 어근은 '하' 이다.
이 하에 누리(대지)라는 뜻의 ㄴ 이 붙어 한이 되었으며 이 한(하나) 는 바로 누리에 자라는 생명을 뜻한다.
또 이 환은 아래아 점으로 한과 같고 한은 우리가 한민족 이라는 바로  그 한 이니 환웅이 바로 한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天神인 환웅은 위 풍백 운사 우사와 함께 地神인 곰네의 누리에서 천제를 지내며 춤을 춘 것이 바로 우리가 천시 하는 박수 무당이 된다. 
 
 4. 자기것을 천시 하면 나라를 빼앗긴다.
 판소리 대가 고 박동진 옹의 말처럼 " 우리것이 좋은것이여" 가 아니고 우리것을 천시하면 결코 세계화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나라 속국이 되거나 아예 나라를 빼앗긴다. 이것의 좋은 예가 먼저 보내드렸던 
[다시 떠오르는 한민족의 해 2. 천부인으로 천조원을 벌어 드리다.]에서와 같이 어느 나라 글자 보다 우수한 문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을 천시하다 보니 우리의 개국지인 중원 그 넓은 대륙에서 이 손바닥만 한 한반도로 쫓겨 온 이유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것 보다 남의 것이나 숭상 하다 보니 지금은 미국의 속국이 되려고 영어가 아니면 말을 못한다. 
즉 소위 이 나라 지식인 이라는 대학교수, 정치인 언론인이  TV 에서 대담 하는 것을 보라. 
" 그로벌스덴다드 시대에 멀티미디어의 뉴푸론티어가 되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은 우리 국민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미국인 들이나 들으라 하는 말이며 그러다 보니 아이들 과자 봉지 하나로 부터 거리의 간판에서 한글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강남의 문화 거리. 한번 한글을 찾아보라.


 
 이와 같이 앗선(첫조선)이 망한 원인도 자기것 보다 지나인들 것을 더 숭상하다 보니 지나인인 한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며 망한 후에도 소위 지식층은 오직 한나라 편에 붙어 벼슬을 하며 자기 백성들을 지나족 보다 더 핍박했다. 즉 근대에 일제에게 빌붙어 일제를 거들던 놈들이 일제 보다 더 포악하게 자기 민족을 핍박 한 것과 같이 한나때도 오히려 우리 지식층이 한나라 지나인 보다 더 자기 민족과 사상을 핍박 했으니 
국토 회복은 하지 못하고 이 손바닥만 한 한반도로 쫓겨 온 것이다.
 
 또 이 한반도로 쫓겨 온 후에도 오직  지나족인 명나라만 섬겨 그 원리부터 모순에 빠지는 성리학만 가지고 왈리 왈기 하며 동인 서인 노론  소론등 당파 싸움만 하닥다 일제 한테 나라를 내 주고 그것도 자력으로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미소의 한반도 양분 야욕에 의한 38 선 분단을 전제로한 해방이 되었으니 8.15 일은 광복절이 아니라 국치일 이다. 
 
 이 38 선도 소련의 남쪽에 얼지않는 부동항(不凍港)을 확보 하려는 소련의 야욕과 이를 빌미로 남한만 가지고는 대륙에 완전한 발판을 놓을 수 없으니 북한까지 다 먹으려는 미국의 야욕에 의해 남한 방위선을 일본으로 후퇴 한다는 애치슨라인의 낚싯밥이 던져 졌고 이 무주공산이 된 남한이 웬 떡이냐 하고 소련의 사주에 의해 김일성이 덜컹 문 것이 바로 6.25 전쟁으로 우리 동포 4 백만이 죽었고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 통일 되지 못한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뿐이며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이산가족이 울고 있고 우리는 지금 막걸리 한 병만 사 먹으려도 엄청난 국방비를 부담 하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 것을 천시하고 남의 것이나 흠모하던 이유때문이고 박수무당이 천한 사람이 된 이유 이다.
 
 이렇게 우리 선비들은 남의 것이나 흠모 
하다 보니 환숫(환웅), 밝달임금(단군)도를 따르던 무당, 풍각쟁이, 남사당, 각설이 패등 풍물 노리패들은 아주 천한 사람이 되어 유리걸식을 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냥 밥을 얻어 먹는 것이 아니라 반듯이 밥값을 하고 다녔다.
여기서 그들이 밥값을 했다는 것은 그들은 바로 거리의 의사들로 백성들의 병을 고쳐 주고 다녔기 때문이다. 
 
5. 춤과 음악은 대체의학이 아니라 정통 의학이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던 환숫,밝달도의 춤과 음악은 지금도 대체 의학이 아니라 정통의학이라 본다. 
 인간의 외상을 제외한 암등 모든 병은 스트레스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글쓴이의 기억으로는 6.25 전후만 하더라도 누가 아파 누워있을 때 먼저 찾는 것이 무당굿이나 풍각쟁이 춤과 노래, 그리고 남사당패나 심지어 각설이 패라도 어디 있는가 였고 그들이 어디 있으면 그  환자는 다 죽어가더라도 기어이 일어나 그곳에 찾아가 그들과 같이 신나게 춤을 추고 오면 그 병은 씻은 듯이 낫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일시적 위약효과(푸라시보)가 아니라 정말 그 병이 나았다. 
이 말을  증거하기위해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던 외과의 전용욱 박사의 말을 인용한다.
 
노화방지 전문의 서울대 권용욱 박사는 2008.3.27.일 KBS1의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건강과 장수에 대해 강의했는데 그의 강의는 먹는 것 등도 말했지만 그 초점은 다음과 같다.
 자신은 외과의로 수많은 암 환자의 암덩이 등을 성공적으로 제거 하고 방사선 치료 등을 했지만 다른데 다시 암이 발생하여 결국은 말기 암환자가 되어 회의에 빠졌었는데 미국, 일본등 외국에 나가 대체의학 치료를 보고 깜작 놀랐다는 것이다. 
 즉 그 대체의학 치료자들도 자기와 같은 유명한 외과의들 이었는데 그들이 권박사에게 한 첫 질문은 " 당신은 그 외과 수술로 암환자 몇 명이나 살렸느냐" 것 이었단다. 
 
그들의 말은 그들도 수많은 암 환자를 외과 수술로 다스렸으나 결국은 말기에 이르러 죽을 날만 기다리는 말기 환자가 되었고 이에 그들도 회의를 느껴 환자들을 대체의학 교실로 불러 드렸더니 그 말기 진단서 까지 있었던 환자가 완치 진단서를 받고 퇴원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체의학 교실에서는 어떻게 치료 하는가? 

 전 박사도 구경해 보니 우선 크게 웃게 하고 음악들 틀어 놓고 박수를 치거나 무엇을 뚜드리게 하고 그 장단에 따라 춤추고 떠들게 했다는 것뿐이었단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웃고 박수치고 그 장단에 춤추면 병이 낫는가? 
 
6.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파동으로 이루어 졌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물질들은 모두 원자로 이루어졌다.
원자는 가운데 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는데, 엄밀히 말하면 전자가 도는 게 아니라 원자의 범위 안에 전자란 놈들이 몇 백억만 분의 1초 동안에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뿐이다.
 
원자의 크기를 축구공만하다고 비유한다면, 이 핵의 크기는 파리똥만하고, 전자는 그 질량이나 부피는 무시해도 될 정도이다.
그러나 파리똥인 핵도 일단 물질이 아닌가?
아니다. 이 파리똥을 분해해보면 이 역시 원자와 같이 허공뿐이다.
그리고 이 핵 속에 어쩌다 포함된 소립자들을 또 분해해보면 이젠 쿼크 6 개가 되는데, 이는 물질이라고 할 수 없는 일종의 에너지 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원자속의 쿼크가 일종의 에너지 파 이듯 이 우주는 태양 별등 어떤 물질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바로 에너지 파동이니 이 우주는 에너지 파동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이 에너지 파동은 아무렇게나 무질서 하게 파동 치는 게 아니라 그 리듬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고...
 창세기에 나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영어나 한국어나 히부리 어가 아니라 우주의 파동이다. 빛도 광파란 말이 있으시 파 이기도 하다.
 또 우리의 부도지에는 그 파를 율려라 했다.
 따라서 창조주인 자연섭리,  즉 창조신은 바로 에네지 파동이며 리듬이고 율려 이기 때문에 사람도 그 리등에 따라 춤을 출 때 신이 오르는 것이고 그 본성으로 돌아 간다.
 
 병이란 몸에 있던 신이 신나게 발산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생기면 각 신경망이나 경낙이 막혀 병이 생긴다고 보기 때문에 위 대체의학 교실이나 위 무당, 풍각쟁이, 남사당, 각설이패등 춤 만 추어도 병이 나았던 것이다.  
 
7. 샴(sham)은 생명이다.
지금 우리는 무당을 샤먼(shaman) 이라고 하는데 이 샴(sham)을 지금 우리는 미신이고 거짓이라 한다.
그러나 샴(sham)은 우리말 삶(生)이 영어화 된 것이라고 한 근거가 있다. 즉 우리말이 영어화 된 것이 많은데 그중 누에고치에서 빼낸 실이 실크가 되었고 하늘의 정기를 받아 온 누리에 전하던 무당의 道인 '삶'이 그 유식한 학자들에 의해 샴(sham)이라는 미신이 된 것이다. 
 
8. 몽골의 무당춤 
지금 한국에는 진짜 세습무인 무당은 없어졌으나 몽골에는 전통 무당춤이 남아있다. 즉 몽골 민속춤을 보면 무당춤이 있는데 이 무당춤을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강신무(降神巫)의 춤이 아니다.
 
 이 몽골 무당춤을 보면 사내 무당은 악사의 장단에 따라 우선 손뼉으로 장단을 맞춰 동서남북과 하늘과 땅을 향하여 춤을 추다가 신이 오르면 하늘에게 정기를 받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하늘에 호소 하다가 그 정기를 동서남북과 땅위에 뿌린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 해야 할것은 그 무당의 소리가 매우 단조로운데 그건 몽골 말도 아니다, 즉 전에 인기리에 방영했던 차마고도의 상인들이 오색천을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며 부르는 노래와 같은데 그 소리는 잘 들어  보면 우리 사서에도 있는 이어가 와 같이 그저 이어 이어,이어아 할 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신의 말이며  이 신의 말은 장단과 춤에서 나와다고 볼 수도 있다.

 
원래 이 춤은 하루 종일 추웠다 하는데 지금은 시간상 10 여분 춘다.
여기서 세습무와 강신무가 무엇인지 말하자면 무당의 원조인 세습무(世習巫)부터 말해야 한다.
 
1)세습무(世習巫)
환숫, 밝달임금은 이글의 제목과 같이 천제를 지내는 박수무당이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까지 했어야 하니 당시는 천제와 정치를 한 사람이 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였으나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3  세 단군 가륵때 부터는 삼시랑(三郞= 三侍郞) 을보륵을 시켜 천제는 삼시랑이 맡게 했다.
  
그러나 우리 환숫, 밝달 도는 불교 유교가 들어오면서 부터 박해를 받자 삼시랑들은 더 이상 낮을 들고 다니며 천시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역사적으로 바뜰어 오던 환숫, 발달도를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었던 그들은 그 아내나 며느리 통해서 면면히 이어 지게 했는데 그들이 바로 단골(檀骨) 네 >당골레 이며 이 당골레는 세습된 세습무로 우리한국에서  마지막 당골레는 1960 년대 진도 지방에 남아 있었고 그녀는 동네 사람 분쟁이나 자녀들의 결혼일, 심지어 굴뚝 고치는 날이나 애들 고뿔만 들려도 이 당골레를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듯 찾았으니 그래서 지금 우리말  단골은 바로 그 단골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당골네들은 환숫, 밝달임금의 도를 교육받아 그대로 세습된 사람들도 지금 강신무와는 다르다.
 
2)강신무(降神巫)
지금은 세습무를 볼 수 없고 오직 강신무 들 뿐이다. 
강신무들은 어쩌다 무병(巫病)에 걸려 백약이 무효이니 그저 무당 노릇을 하는것 뿐이니 미신이나 다름없고 환숫. 밝달임금의 도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위에서 말 했듯이 원래 무당춤을 보려면 몽골 민속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9. 堂狗三年 作風月이란 말의 뜻은?
삼시랑들은 하느님, 환숫, 발달임금의 도를 바뜨는 서낭당 당집에서 삼신을 바뜰게 했는데 우리말에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읆픈다(堂狗三年 作風月)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서당개란 잘못 전해진 말이다. 즉 堂과 狗를 서당집 개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 첫조선인 앗선을 지나족인 한나라에 내 준것 부터가 우리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무식한 것으로 철저히 무시하고 지나인의 도나 한자만을 숭상했기 때문에 서낭당인 을 서당으로 알고 그 서낭당 삼시랑 곁, 즉 삼시랑  에서 삼시랑에게 도를 배우던 수련생을 삼시랑 가 에 있다는  에 우리말에 반듯이 붙는 접미사 이(예 갑돌이 갑순이, 학교> 핵교, 소고기 >쇠고기등) 를 붙여 '가' > '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 선비들은 삼시랑 수련생을 개(狗) 로 볼 정도로 오직 지나인만 숭상하고 우리 것이라면 이를 갈고 천시 했던 것이 바로 堂狗三年 作風月이고 서당개 3 년에 풍월을 읊은 다는 말이니 우리는 앞으로 이 말을 쓰지 말아야 할것이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근거는 風月 이란흔히 선비들이 산천경개 좋은곳에서 시나 가무를 즐긴다는 것이 아니라 밝달임금의 밝달도의 이두문 이기 때문이다.즉 風은 밝달의 을 로 표현하고 月은 밝달의 달을 표현하여 밝달도를 풍월도라 한다,
또 이를 다른 말로 하면 風流道가 되기도 하는데 이도 風은 역시 바달의 바 이며 流는 흐를流, 달릴流에서 달만 뽑아 인용한 것이다.

10. 한국에만 대웅전이 있는 이유.
 이 삼시랑들은 처음에는 전국에 흐터져 밝달임금 대신 부근의 천제와 지방을 다스렸으나 삼국때 불교가 들어오면서 부터 무시당하기 시작 했다. 즉 삼시랑당의 환숫상(雄常)을 뽑아 버리고 그 대신 부처상을 세웠으니 이것이 불교 국가 중에 오직 한국에만 있는 대웅전인데 그 뜻은 환숫의 웅상 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웃기는 일이 생긴다.
 우리말에 쓸모 없는 것을 부처님 가운데 다리? 라 하면서 그 쓸모없는 가운데 다리가 모셔진 전각이 桓雄 의 雄 보다 더 큰 大雄殿 이라니? 참으로 배꼽을 잡고 웃어야 할 것이 바로 대웅전이다.
여기에 대한 근거 문헌을 제시 한다. 
 
<고려팔관잡기>에 또한 말하되 ‘삼랑’은 배달의 신하이다. 씨를 뿌리고 재물을 관리하는 자를 업(業)1) 이라 하고 교화와 복을 비는 자를 랑(郞)2)이라 하고 무리를 지어 공 이름을 주관하는 자를 ‘백(伯)이라 하니, 즉 옛날에 발표된 하느님의 풍습이다. 대개 강령(降靈)하는 능력이 있어서 예언하는 일이 많은데 신의 섭리를 받아 적중한다. 지금 혈구에 삼랑성이 있는데 성은 곧 삼랑이 머무르던 곳이다. 랑(郞)은 곧 삼신을 수호하던 관직이다.3) 불상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절을 세워 이를 대웅(大雄)이라 했는데, 이는 중들이 옛것을 세습하여 부르는 것이고, 본래 승가의 말은 아니다.4) 또 이르되 “승도나 유생들이나 모두 랑가(郎家)에 예속되어 있다”5) 라고 함을 이로써 알겠다.  (高麗八觀雜記亦曰三郞倍達臣也主稼種財理者爲業主敎化威福者爲郞主聚衆願功者爲伯卽古發神道也皆能降靈豫言多神理屢中也今穴口有三郞城城者卽三郞宿衛之所也郎者卽三神守護之官也佛像始入也建寺稱大雄此僧徒之襲古仍稱而本非僧家言也又云僧徒儒生皆隸於郎家以此可知也....)
 
1) 업(業): 어비 - 아비 (夫, 父) - 사내 - 사내의 상징물. 거대한 업구렁이
2), 3) 랑(郞)자가 붙으면 왜 모두 화랑, 즉 화랭이(남자무당)인가가 여기서 잘 설명되어 있다. 
4) 웅(雄)은 수컷 웅 자이며 환웅(桓雄)의 웅이다. 즉 생명 창조의 남근을 말하므로 불상(佛像)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점잖 거나 쓸모가 없는 것을 ‘부처님 가운데 도막(다리?) 같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불교가 들어와 우리의 소도에 있는 웅상(雄像)이 거룩하다고 여기에 큰 대 자 하나를 더 붙여 대웅전(大雄殿)이라 이름하였으니, 이것을 해석하면 ‘거대한 남근이 있는 전각’이 된다. 물론 환웅의 ‘웅’은 정신적인 숫(남근)으로 생명의 창조섭리를 세운 것을 말한다. 그렇더라도 생사를 같은 것(生死一如)으로 보는 불당에 ‘거대한 숫이 있는 전각’ 이란 의미심상한 미소를 짓게 한다.
5) ‘승도나 유생들이나 모두 낭가(郞家)에 예속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이로써 알겠다’라는 말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문맥이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인데, 즉 당시 승도나 유생들의 풍속은 모두 낭가(郞家), 즉 무당의 집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1. 남근이 노골적으로 여음에 삽입 하고 있는 서낭나무
 남근상이 모셔진 소도 (蘇塗)는 무엇인가?  소도는 '솟앗다'는 '솟오'가 '솓오' >또는, 솟터가 '소도(蘇塗)라는 한문 표기로 된 말로 보는데 이 솟았다는 것은 는 당연히 남근인 '숫'이 솟았다는 말로 사실 '솟'이나 '숫'은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이 소도 안에는 남근상(男根象)이 서 있다는 말이고 이 남근상도 그냥 남근상이 아니라 여음에 삽입된 남근상이 솟아있다는 말이다. 
 
 지금 힌두교 성지에는 링가(linga) 라는 남근(男根)상이 서있고 그 옆에는 요니(yoni )라는 여음(女陰)상이 누어있는데 이 창조와 파괴가 한자리에 있는것은 파괴가 있어야만 창조가 된다는 이유 이다. 즉 힌두교 에서는 여음을 아기를 낳아 기르는 누리로 보지 않고 오직 남근을 파괴 시키는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성소였던 소도 안에는 아예 여음에 남근을 삽입(揷入)한 삽입 상이...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마치 사람이 성교할 때 하듯 꽂고 있는 상이 있다면 과연 어느 것이 더 논리 적인가? 
 
 지금 우리의 국어사전에는 서낭당은  성황당( 城隍堂)의 속어라 하는데 이는 완전 주객이 뒤바뀐 말이다. 성황당이란 우리 서낭당을 한자로 어떻게 쓸 줄 모르니 생긴 말이고 서낭당의 '서'는 우리말 두서너 개 할때 쓰는 셋이고 이는 사내의 대표 환웅을 뜻하는 말이며 '낭'은 사내라는 郎 이고 '당'은 집 이라는 堂이다. 즉  삼시랑들이 있던 당집이 서낭당이다. 
 
 6.25 때 까지만 해도 서낭당 서낭나무에는 오색 천을 찢어 새끼줄에 꾀어 나무 둥치에 둘루고 (현재 민속촌의 나뭇가지에 건 오색천은 잘못된 것임) 나무 가지에는 곡식 자루를 얹어 놓고 그 아래에는 돌무더기를 싸아 놓았다.
여기서 오색천은 환웅의 신성한 음모(陰毛)를 뜻하며 곡식 자루는 씨를 보관하는 고환을 맣하고 그  밑 돌 무더기는 여음을 뜻한다. 
 
 이 서낭나무는 솟터 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웅상(雄常)이라 하여 전국에 세워졌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산해경에 의하면 "北有樹 名曰雄常先八代帝 於此取之" 즉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을 ‘웅상’ 이라 한다. 늘 앞서 팔대의 제왕들이 여기서 이를 취해갔다" 라고 했다. 여기서 先八代帝 란 중국의 삼황오제로 들어가는 복희'황제, 요순등이며  웅상이란 환웅, 남근을 상징하는 소도의 신물(蘇塗-솟터의 서낭나무)인데 이를 팔대 제왕이 취해 갔다면 그 풍속을 취해 갔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그 서낭당은 전국적 풍속이 되었을 것이다.
 
 환단고기 소도경전 이맥의 마한세기(馬韓世記) 上 중에 
...이때부터 소도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 형상의 웅상1)을 보게 되었다. 산 정상에는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이십분의 일의 세를 내었다. 해마다 풍년이요 어덕과 산에는 노적가리가 쌓이니 백성들은 즐거워 ‘태백환무’ 2) 라는 노래를 지어 전했다....
(...自時蘇途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山頂皆有四來之民環聚墟落四家同井二十稅一時和年豊露積邱山萬姓歡康之作太白環舞之歌以傳....)
1) 산상웅상- 다음에 설명된다.
2) 태백환무(太白環舞) - 태백은 태초부터 힌 것, 해, 환한 것을 말함으로 환님(桓因 = 한한님=하느님) 을 말하고 환무는 '강강 수월래' 같은 춤이다. 그러니까 그때무터 우리 민족은 강강수월래 가사를 지어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 이다. 
 
12. 남근 형상의 웅상(山像雄常)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산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산상웅상(山像雄常)'이 뭔지도 모른다. 
<산해경>의 '北有樹名曰雄常先八代帝於此取之'를 저 유명하신 안호상 박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고 <한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 박사는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한단고기 201쪽) 이 산상웅상이 한자로 山像雄常이라고 써있으니까 한자 해석대로 '山 형상의 숫컷 형상'이라고 중국인들 상식으로 번역하려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서 山은 '산'이라 하지 않고 '오름'이라 했다. 지금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오름세가 '위세오름'인데 이 '오름'이 바로 우리말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글에서 山은 무엇인가? 우리말 '산'이란 400년 전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만 보더라도 丁을 '산정'이라 했다. 즉, 장정(壯丁), 젊은 '사내'를 그냥 '산'이라 했다 .즉, 산에 접미사 애가 붙어 산애>사내가 된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한글이 없었으니, 아니 원시한글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이 우리 원시한글로 자기네 글들을 쓸 수도 없었겠지만, 이는 틀림없이 우리 말 사내 라는 '산'을 그 발음만 '山'으로 이두식으로 적은 것이다.
 
 즉, 처용가에서 '다리가 네 개어라' 를 한글이 없으니까 한자로 '脚烏伊 四時於羅'라고 이두로 적은 것과 같다. 그렇다면 늙은 남자나 애들은 왜 '사내'내 아니란 말인가? 이는 발기할 수 있는, 아기를 생산 할 수 있는  숫(남근)을 가진 자가 바로 '사내 >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 <산해경>의 대석학들도 풀지 못한 '山象雄常'의 비밀은 풀린다.
바로 이것은 '남근 형상의 숫이 恒常하는 것, 常態, 常形'이란 말이고, 이것이 당시 얼마나 귀중한 신앙이며 기도의 대상이었는가는 그 웅상을 만들어 기도한 우리 민족이나 이 웅상의 풍속을 무려 팔대의 제왕들이 취해갔다는 기록(先八代帝於此取之)으로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신성한 생명의 창조 도구인 남근을 오직 성의 쾌락만의 도구로 사용한 지나인들의 말만 듣고 비천시했으니 우리말에 여성의 생리를  '더러븐 이슬'이라고 했고 동네 대동굿만 하려 해도 혹 집에 생리 하는 부인이 있을지 모르니 남자들만의 집에서 잤다.
 이렇게 자기 것을 비천시 하다 보니 지금 대 학자들도 산상웅상이 지금 서낭나무 인지도 모른다.
 
이 전국적으로 있었던 서낭당(소도)에서 우리 조상은 장단을 치고 춤을  춤을 추었다는 객관적 중국 기록을 보자.
 
 중국의 ‘이십오사’를 보면 
...평소 오월달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 지어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 낯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인 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고 몸을 업드렸다 일어났다 하며 손발로 장단을 맞추는데 장단은 중국의 탁무(鐸舞?)와 유사한데가 있다. 시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역시 이같이 귀신을 믿는데 나라의 읍마다 각기 한사람씩 세워 천신을 주제케 하며 그 이름을 천군(天君) 1) 이라 한다. 또 모든 나라에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름을 ‘소도(蘇塗)라 하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2) 귀신을 섬기는데 어떤 도망자건 그안에 들어가면 대개 싸움을 할망정 돌려주지는 않는다. 그 소도를 세운뜻은 부도(浮屠)와 비슷하나 옳고 그름 행하는 바는 다름이 있다. 
(...常五月下種訖祭鬼神群聚歌舞飮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昻手足相應節奏有似鐸舞十月農功畢亦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蘇塗立大木懸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而所行善惡有異...)
 
1) 천군 - 무속에서 무당을 만신(萬神) 또는 천군(天君) 이라도도 하는데 이는 단군(檀君)과 같은 뜻이다. 
2)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 뒤에도 수없이 나오지만 환웅은 ‘숫’을 의미하므로 환웅상은 남근일 수밖에 없으며 북 등은 고환을 그리고 방울은 ‘알’ 즉 ‘씨앗’ 등을 상징 한다. 
 
13. 사물노리와 난타가 세계적으로 환영을 받는 이유.
 지금 아프리카등 오지, 또는 폴리네시안 민속춤을 보면 그들은 음악과 춤을 즐긴다. 그져 먹고 나면 음악과 춤이다.
 그러나 그 음악은 베토벤이나 모찰트의 음악이 아니고 단조로운 북소리 이며 춤도 왈스, 탱고등 춤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보이는 그저 같은 동작을 끝없이 반복 하는것 뿐이고 때에 따라 미친 듯이 춘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음악과 춤 속에서 신이 오르니 이런 춤은 주로 신께 제사 지낼 때 쓴다.
 
우리의 농악도 단순한 징 북 꽹가리 장구 등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인데 그 춤 구경을 하는 사람이면 아무리 어린 아기나 노인, 그리고 첨잔한 학자라도 어깨라도 들썩이지 않을 수 없다. 
 또 글쓴이가 젊었을 때 술집에 가 홍도야 우지마라, 울고넘는 박달재 등을 부를때 반듯이 젓가락 장단을 쳐야 신이 났는데 지금은 노래방으로 바뀌었다. 이 노래방의 노래와 춤  때문에 우리의 평균 수명이 한 5 년은 늘었을 것이다.
 
지금 사물노리나 난타가 세계인으로 부터 환영을 받는데 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곡 보다 단조로운 것 같아도 이것이 바로 우주 창조 파동 리듬이고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며 이 공연을 듣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게 한다. 즉 어깨라도 들썩이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적 춤이기 때문이다.
 
14. 사람은 태어나기 전 부터 두드리고 춤추는 존재였다.
 글쓴이가 자식을 기를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손주놈이 태어나 한 3 ~4 개월이 되니 작난감을 머리위에 매달아 주면 두들기기 시작했고 6 개월이 되어 에미가 손뼉이라도 치며 장단을 맞춰 주면 기지도 못하는 놈이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춤을 추었다. 
또 이기들 앞에 테레비를 켜 주면 비록 말은 하지 못하나 노래하고 춤을 출때 울다가도 따라 춤을 춘다.
 
 이 아이들은 크면서 뛰고 춤을 추지 못하게 하면 하다못해  발 이라도 떤다.
이때 어른들은 발을 떨면 재수 없다고 말리지만 이도 춤을 추어야 할 때 춤을 추지 못하니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발을 떨더라도 말리지 말아야 건강라고 공부도 잘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의 돌아가실 할머니도  음악을 틀어주면 하다못해 어깨춤이라도 춘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장단에 따라 춤을 출줄 안다는 것이고 이는 본능이니 우리가 태어 나기전 부터 있었던 우주의 창조음 이었기 때문으로 본다.
 이 우리의 본성이 밝달임금 이후로 가려졌던 것은 지나인들의 인간은 첨잔해야 한다는 예의 도덕과 존엄해야 한다는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그 예의 도덕과 종교의 존엄성은 인간의 본성을 말살 하는것 밖에 되지 않는다.
 
 15. 결론
이상과 같은 논리로 환숫, 밝달임금이 박수무당을 춤을 추었던 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었고 우리도 이 세상에 태어나 병 없이 건강하게 살려면 반드시 시간 있을 때마다, 아니 시간을 일부러라도 내어 그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대체 의학이 아니라 오히려 정통의학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 앞에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자기 책임이듯 건강역시 자기의 행동여하 이니 영양가 있는 것을 많이 먹고 편케  쉰다고 건강한 게 아니라 시골 할머니가 그렇듯이 잠시도 손발을 쉬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특히 현대병은 거의가 스트레스에 의하여 일어나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는 반듯이 춤을 춰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글쓴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고뇌 없이 부자가 되어 건강하게 잘 살다가 때가 되면 헌옷인 이 육신을 벗고 우리가 왔던 하늘로 돌아가려면 다음 세 가지만 하면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글쓴이 카페에서 강조 하고 있다.
 
1) 종교? 믿음의 줄을 잘 서라.
 지금 각 종교 지도자는 자기네 종교를 믿어야만 복을 많이 받고 천당, 극락에 갈 수 있다 한다.
 여기서 만약 그 교리를 따졌다가는 종교는 믿음 이니 교리를 따지기전 믿음 부터 가지란다. 
 그러나 그 믿음의 줄을 잘못 섯다가는 전에 백백교, 용화교, 인민대사원 자살사건, 천당표 사건,  얼마 전 오대양 사건이나 요즘도 말세론자들로 자신의 재산과 생명까지 바치고 만다. 
 
 어떤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반듯이 그 교리부터 따져 보고 믿어야 하지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교를 믿으면 그 수렁 속으로 빠져 든다.
 여기서 형이상학인 종교가 형이하학인 과학이란 말로 논할 수 있는가 하는 토가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하지만 과학이란 아직은 미숙하나 신의 섭리를 밝히는 학문이고 인공위성으로 인간이 이 우주의 별 하나를 창조하는 것이나 딤임팩트로 우주의 별 하나를 파괴 하는것, 그리고 핸드폰 하나로 천리안 만리안이 되는 것은 모두 과학이며 이 과학은 몇 십 만분의 일만 창조원리에 어긋나도 되지 않는다.
 
 불교의 교리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 나는 것은 12 연기의 첫 머리인 無明을 끊지 못하여 태어나 生老病死의 윤회를 거듭할 뿐이니 그 무명의 고리를 끊고 부처님처럼 성불 하라는 것이 인사말이다.
그러나 부처님처럼 해탈 성불하여 우주 차원의 최고봉인 三十三天, 非相非非相 處天의 寂滅寶宮에 들면 일체의 지각이 끊어져 그 귀가에 대포를 쏴도  모른다. 
 
 이 땅 위에 모든 생명은 암수의 생식기가 다르게 태어나고 그 암수가 교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이 창조의 원리가 잘못 되었다고 할 것인가?
 짐승의 새끼도  그처럼 귀여운 것이 없으며 사람도 아기기 태어나면 그 아기만큼 더 귀여운 존재도 없고 또 이 땅 위에 그보다 더 경사스럽고 축복해야 할 일도 없다.
그렇다면 불교의 교리는 이 귀여운 짐승 새끼나 귀여운 아기가 태어나는 것도 12 연기의 무명을 끊지 못해 태어 난다 하고 있으니 이 땅이 만들어 진 이유부터 없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하늘의 섭리, 즉 자연의 섭리에 위배 되는것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창조신 이라는 신이 있고 그 창조신이 인간도 창조 했다 하므로 인간은 그 창조신의 피조물이며 그래서 인간은 그 창조신의 종이고 죄인이며 그래서 굴종해야 하므로 영광스럽게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나 알라등 창조신은 다 인간이 만든 人造神이다.
 이 인간 자신이 만은 인조신에게 목숨을 바치다 보니 십자군 전쟁에서처럼 수많은 인명이 죽었고 그간 수많은 순교자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영광스럽게도 자살 폭탄을 멘다.
 
 하느님의 교훈은 人本主義다. 이 우주가 만들어진 이유도 저 해와 달이 있는 이유도 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니 인간이 바로 이 우주의 주인이다.
 따라서 人乃天 이라 하듯이 인간의 원질이 하느님이고 자연의 섭리다. 이 자연의 섭리가 이 3 차원 물질세계에 자기표현을 한 것이 바로 사람이니 바로 이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경사스럽고 축복 받아야 할 일 이며 따라서 사람한테 따로 창조주가 있을 수 없다.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 교훈 진본 천부경 내용은 참으로 논리적이며 과학적이고 하늘의 섭리, 즉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교훈이다.
진본 천부경은 하나 둘 셋 ...열이다. 이는 애초에 숫자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 가는 교훈이었는데 환숫 이후 많은 이들이 아침저녁으로 외우다 보니 천년 후에나 숫자가 되었다는 근거가 우리 선조가 쓰던 금문, 갑골문 상으로 나타 난다.
 
 진본 천부경 하나는 하늘의 정신인 생명을 누리에 받는것이고 둘은 땅인 몸( 아미노산등 각종단백질)으로 그 하늘의 정기를 두르는 것이며 셋은 사내이고 넷은 사내의 짝인 여자이며 다섯은 땅위에 세우다 이고 여섯을 번성 하거라 이며 일곱은 아이들의 집을 일구란 말이고 여덣은 여름(果)의 집으로 콩깍지와 같은 여자의 집이며 아홉은 씨족의 울타리이고 열은 열고 나가라는 말이라 했으니 이는 과학이고 논리이며 생물의 진화 과정까지 말하는 자연 섭리다. 
 
 이 짧은 말 속에 우리가 태어난 원인과 너와 내가 더불어 우리가 되고 그러면 피의 전쟁도 막고 고뇌 없이 부자 되어 잘 살다가 때가 되면 헌 옷에 불과한 육신을 벗고 다시 신선이 되어 우리가 왔던 하늘나라로 간다는 등 엄청난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은 그때 말의 어원이 불과 20 여개 단어 였기 때문이다.
[다시 떠오르는 한민족의 해1. 천부경의 혼혈 가정으로 세계 종주국이 되다.] 참조
 
2)자신의 운을 자신이 만드는 해오름 관법 
 잘살고 못사는 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주는 복 때문이 아니다.
 그런 신들은 그럴 실력도 없고 또 실력이 있다 해도 자기에게 아양 떠는 자들에게만 복을 준다면 이는 저급령도 한참 저급령이다.
 따라서 아무리 절이나 교회에 가서 돈을 많이 내고 복을 빌어도 그건 절이나 교회를 좋게 할 뿐이지 자신의 운과는 아무 상관없다.
 
 부처님, 하나님(우리 하느님이 아님)께 복을 빌어 간혹 정말 복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부처님말씀 一切唯心造,와  " 네 믿음대로 되리라" 는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 믿음 때문이지 그들이 복을 주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자기 믿음은 표층의식인 현재 의식이 아니라 잠재의식이다.
 표층의식이 운전사라면 이 잠재의식은 기관차와 같아 엄청난 힘이 있다.
 즉 잠재의식은 눈도 멀고 귀도 먹었지만 그 대신 운전사가 가자는 대로 잘도 따라가며 막강한 힘을 낸다.
 따라서 예수 가라사대 "네 믿음이 겨자씨알만 해도 저 남산을 뽑아다가 인천 앞바다에 처 밖을 수 있다. "ㅎㅎ.는 말도 표층의식이 아니라 바로 잠재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단전 호흡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초월 명상이다. 즉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죽어 잘 때와 같은 생명의 원천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해오름 관법은 죽어 자는게 아니라 자연의 섭리대로 숨을 조절하는것이다. 즉 명상과 초월 명상 사이를 들락이며 자연의 섭리대로 숨을 조절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환숫, 발달임금때 숨을 조절 하던 방법을 조식법(調息法)이라 하고 이는 신라의  화랑들이나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이 바로 조식법을 했다.
 
 그러나 특히 이조때 들어와서는 더욱 우리것을 버리고 송나라, 명나라의 그 성리학만 숭상하다 보니 환단고기 소도경전을 쓴 연산군때 이맥에 의하면 당시 우리 밝달임금의 도를 수행하던 조의선인((皁衣仙人)의 皁衣 소리만 해도 뭇 화살을 맞고 결국 삭탈 관직 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길림성 무용총 내부 벽화의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그림이다. 음식상을 준비하면서 왼쪽 두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주인도 검은 옷을 입은 조의선인 들이다.)

   
 
 이 우리가 천시 하던 조식법을 되 살려 글쓴이의 카페에서는 해오름 관법이라 했는데 왜 해 오름인가는 다시 설명이 길어야 하지만 우선 환숫이 해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보는 해오름 관법을 하려면 온갖 잡생각이 먼저 든다.
 따라서 글쓴이는 해오름 관법을 할때 먼저 진본 천부경 하나 둘 셋 ...열과 그 의미부터 생각해 보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명상에 들라 했다.
 
 이렇게 비몽사몽간 잠재의식에 물들었던 의식은 거대한 기관차 같이  힘이 있더 예수님 말씀처럼 남산을 뽑아다가 인천 앞바다에 처 밖을 수도 있다. ㅎㅎ 
 그리고 이렇게 잠재의식에 싸인 생각은 바로 그 사람의 운이 되니 독자님들은 무엇인가 소원이 있고 그 소원에 복이 따르고 싶다면 해오름 관법을 하라.
  
 단 잠재의식이 거부 할 것은 아예 하지도 말라. 돈 한 푼 없는 놈이 일시에 백억을 벌겠다면 그 잠재의식서 부터 웃기고 있네. 이다. 따라서 천만 원부터 어떻게 해서 벌 것인가 부터 생각하고 또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있다고 감이 입속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감이 입속에 들어갈 짓을 계속 해야 한다.
 
 그외 이 해오름 관법은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수험생이 학교에서 졸음이  올 때도 단 10 분만해도 정신이 가을 하늘 같이 맑아지기도 한다.
 
 3) 만병통치 밝달춤
  글쓴이는 위에서 환숫, 밝달임금의 박수무당 춤에서 길게 설명한것은 다 이 말을 하려고 한 것이다.
 이 환숫, 밝달임금 춤을 글쓴이는 간단하게 밝달춤이라 했다.
 
 음악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저 아기한테 손뼉을 처 주는 짝짜꿍으로 부터 지개 작대기나 막대 두 개라도 두드리는 것이고 그것이 좀 발달한 것이 바로 징과 북과 꽹가리의 밝달춤, 그 후 서양에서 피아노, 바이올린등 고급 악기와 그들 악기로 연주하는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클래식 등이 있다. 

 
 그러나 어느 종족이건 음악의 시작은 단순히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 되었는데 특이 이런 원초적 음악에는 장단이 맞지 않는 것이 없고 장단이 맞지 않으면 신이 오르지 않으며 신이 오르지 않으면 이는 음악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착각 하는 사람들이 많다. 
 클래식을 연주 할 때는 장단은 그만두고 청중이 생리적인 기침이나 재치기만 해도 실례이니 이는 선악과(인간의 지혜)를 따 먹고 타락한인간이 선악과 이전 인간을 미개 하다고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원초적 음악을 무시 하고 옆 길로 나간 것이
고 이것은 그들만의 우물을 파고 그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는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음악은 장단에 따라 춤을 출수 있어야 하고 장단을 맞추고 춤을 출수 없는것은  인간 본성의 음악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글래식만을 고급 음악이라 한다.

 예전에 대중가요 가수들이 세종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려 했으나 유치한 대중음악 이라고 거절을 당했고 얼마 전 인순이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려 했으나 역시 유치한 대중가요라고 거절을 당했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 사람 모두가 즐기는 것이 대중음악 아닌가? 

 꼭 서양 사람이 만들고 꼭 연미복을 입고 연주하고 엄숙한 자세로 들어야 하며 거기에 도취된 몇명이 즐기는 것이 과연 모든 인간의 고급 음악인가?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 우주는 파동과 리듬으로 이루어 졌고 그것이 생명이니  인간도 그 파동의 한  줄기이다. 오로라 같이 아름답게 리듬 치는 파동의 한 갈래가 인간 일 뿐, 그 이외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인간이 그 우주의 파동과 리듬을 따르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현대 서양의학은 환부와 증상만 치료하므로 형이하학 (形而下學)치료이다. 
 
 한의학은 일종의 예방의학이다. 그 병변이 일어난 원인 부터 치료하자니 치료의 효과가 금방 나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한의학은 일침이약(一針二藥) 이라고 침의 치료가 우선이다. 이 침의 치료는 병변을 일으키는 경낙치료이다.
 이 경낙은 일종의 氣의 흐름이고 氣란 形而下學 으로는 증명 할 수 없는 形而 下와 形而 上의 중간인 이각지대(異角地代)에 있는 치료법이다.
 
 그러나 밝달춤은 완전한 예방의학이며 정통 치료 의학이다. 
 우선 현상적으로는 현대병에 가장 무서운 비만의 치료가 되고 또 추간판 탈출, 즉 디스 크 탈출로 인한 허리 근육이나 무릅등 아픈데, 또는 오장육부의 약화된 부분을 강하게 하여 어떤 병도 예방, 치료 되게 하는데 이는 한의학과 같은 形而下學인 치료이다. 
 그러나 신나게 춤을 추면 신이 올라 스트레스 까지  풀어 주니 形而上學의 치료까지 된다.
 현재 인간의 치료법 중에 形而上學 치료는  위 무당춤등 풍물 치료 밖에 없다.
 따라서 밝달춤은 形而下, 形而上 모두 치료하는 명약중 명약이고 아직까지 나온 인간의 치료 법중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치료법 이라 했다가는 무면허 의술이라고 쇠고랑을 찰지 모르니 일단 예방의학이라고 하자. ㅎㅎ 
 
 이  춤은 원래 어떤 규칙도 없고 우리가 평소 쓰지 않던 사대사천 육천미디의 근육을 디스코 장단에 맞추어 오두방정으로 그저 흔들며 추는 것인데 글쓴이는 하루 열 대여섯 시간이나 글을 쓰다가 밤 11 시경에 한강가 둔치길에서  MP 3 으로 디스코 춤을 추면서 1 시간에 8 K 의 축지법을 한다. 
 그러나 이런 오두방정 춤을 추다 보면 신이 올라 보통 30 분을 미친듯이 더 뛰어 보통 하루 밤에 12 K를 뛰는데 그래도 서운하다. 
 
 그러면 하루종일 글 쓰느라고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가시고 땀에 홈빡 젖은 몸을 한 겨울 이라도 냉수로 샤워라도 하고 자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개꿈도 꾸지 않고 죽어 자며 다음날은 생기가 펄펄  넘친다.
따라서 글쓴이는 어느새 습관이 되어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나가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런지  아직 감기한번 걸린 일이 없으며 실제 나이는 내일 모레 70 인데 어떤 눈 삔 사람은 아직 50 으로 보기도 한다. ㅎㅎ 
 
 이 밝달춤은 돈도 들지 않고 시간 장소도 따로 들일 필요가 없다.
 밖에 나가 뛸 공간이 없는 사람은 자기 전 테레비라도 봐 가며 오디오 기기를 따로 틀어놓고 밝달 춤을 출 수도 있다.
 
 또 퇴근길에 미리 지하철이나 뻐스 두어정거장 미리 내려 미친자 처럼 팔을 휘저으며 신나게 걸어 오면 되고 그외 무슨일이던 음악을 틀어 놓고 신나게만 하면 되는데 심지어 밥 먹을때 숫갈질도, 애인과 거시기 할 때도 장단에 맞춰 신나게 하라는 것이다. ㅎㅎ 

 
결론은 이 우리조차도 천시 했던 박수 무당인 환웅, 단군의 무당춤인, 밝달 춤 으로 전 세계인의 현대병예방과 치료를 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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