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동인괘>

종교정신과 道 2015. 1. 26. 11:22

개벽문화강좌-주역- <동인괘>


지난호 지수 사(地水 師)괘 강좌에 이어, 이번 호에는 천화 동인(天火 同人)괘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천지가 사귀지 못하면 비괘否卦(:)가 된다. 그러나 사물은 끝내 비색할 수 없으므로 이를 타파하기 위해 동인괘가 그 다음에 온다. 동인괘의 형상은 비색하고 어둡던 하늘에 드디어 진리의 태양이 떠오른 것을 나타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문명文明하게 할 수 있는 밝은 지혜가 있고 또 밖으로는 도를 행해갈 강건한 덕이 있으니, 문명을 이루고 덕을 쌓아 마침내 세상에 진리의 광명을 환히 비추게 되는 괘가 바로 동인괘이다. 

지극히 성실하고 사사로움이 없기에 험난함을 헤쳐내고 원대히 나아가는 이 동인괘의 괘사는 곧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의 행실을 말하고 있다. 또 진실로 진리에 통투通透하여 내면이 강건하므로 자신의 사사로운 생명까지도 이겨내어 마침내 천하 대동의 도道를 다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되면 곧 중정中正하여 하늘[乾]에 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천지의 마음에 통하여 천하의 뜻을 대동하게 하는 게 아니라면 이는 결국 사사로운 정으로 합하는 모임일 뿐이다. 이 괘에서는 특히 군자의 바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모임을 경계하고 있다. 




【卦辭】 

同人于野면 亨하리니 利涉大川이며 利君子의 貞하니라. 
同人을 들에서 하면 형통하리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군자의 바름(貞)이 이로우니라 

(동인同人은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함에 있어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 널리 사귀는 것이다. 사사로운 모임이 아니므로 넓고 먼 '들(野)'의 형상을 취한 것이다. 원대한 뜻으로 뭉친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모임이므로 결국에는 천하가 다 진리와 하나되어 한 길을 가게 되므로 큰 일을 하더라도 모든 어려움을 다 헤쳐낼 수 있다. 단 군자의 정도正道(곧 中道)로써 행해야만 공업公業을 이룰 수 있다.) 


【爻辭】 

初九는 同人于門이니 无咎리라. 
初九는 同人을 문에서 함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六二는 同人于宗이니 吝하도다. 
六二는 同人을 종당에서 함이니 부끄럽다. 

九三은 伏戎于莽하고 升其高陵하야 三歲不興이로다. 
九三은 병사를 숲에 매복시키고 그 높은 언덕에 올라 3년이나 일어나지 못하도다. 

九四는 乘其墉호대 不克攻이니 吉하니라. 
九四는 그 담에 오르되 능히 치지 못하니 길하니라. 

九五는 同人이 先號F而後笑니 大師克이라야 相遇로다. 
九五는 남과 함께 하되 먼저는 부르짖어 울고 뒤에는 웃으니, 큰 군사로 이겨야 서로 만나리라. 

上九는 同人于郊니 无悔니라. 
上九는 同人을 郊外에서 하는 것이니 뉘우침이 없느니라. 

동인괘의 괘사卦辭에서 '야野'는 먼 곳이나 바깥을 말한다. 주변의 친숙한 환경들에 안주해서는 사사롭고 좁은 소견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바깥 세상으로 과감히 나아가 넓고 멀리 사귀어 온 천하 사람들과 환한 진리의 광명을 함께 하여야 형통한 것이다. 그러면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 '큰 내를 건넌다'는 것은 큰 일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사사로운 좁은 판에 매이지 않으면 지공대동至公大同한 도를 행할 수 있게 되는데, 공심公心을 품을 수 있으면 아무리 먼길이라도 모두가 함께 할 수가 있게 된다. 천하가 모두 나와 함께 진리의 광명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험난함인들 건너지 못하겠으며 또 그 어떤 위태로움인들 형통하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이처럼 천하가 함께 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군자의 정도正道(貞: 천하의 至公大同한 道)로써 하여야 한다. 



동인괘의 첫 효사인 초구初九는 강직한 재질로 바른 자리를 얻었기에 편사偏私없이 사람과 공정하게 어울리는 자이다. 천하를 대동大同하게 하려는 첫 시작은 바로 이런 심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나를 가로막는 이 좁은 문을 열고 과감히 밖으로 나서면 삿된 감정이나 편벽됨이 없어서 사람과 함께 함에 좀더 넓고 공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허물은 원래 차등을 두는 마음자리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므로, 사람과 함께 하려는 초기에는 반드시 사사롭거나 치우치는 마음을 과감히 버리고 반드시 공심을 품어야 한다. 또 문밖에 나서는 그 시작부터 하괘下卦의 실질 주체이자 바로 윗사람인 육이六二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육이六二는 중효中爻로써 중정中正의 덕을 갖추고 있으나 음위陰位에 음효가 위치하고 있어 음적인 성향이 없지 않다. 이러한 성향은 상괘上卦의 강력한 구오九五 군주의 좋은 보필자여서 큰 비호를 받고 있다. 유능하지만 지위가 낮은 이 위치에서는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혹여 자신을 비호해 주는 세력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 효는 중도中道의 심법과 더불어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리로 하나되려는 '동인同人'의 마음가짐에 있어 혹여 조금의 사사로움과 편벽됨이라도 끼어들까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이 효는 지나치게 강한 성향을 가진 자이다. 괘의 오직 한 음陰인 육이六二를 여러 양陽들은 모두 함께 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효는 육이와 위치상 매우 가깝다. 그런데 육이가 중정中正의 도로 구오九五와 서로 응하니 삼효三爻가 그 사이에서 무력으로 육이를 뺏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사를 수풀 속에 숨겨두고 높은 구릉에서 세력을 헤아려 본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를 해도 강직한 구오에게 의리상으로나 힘으로나 이길 수 없으므로 3년씩이나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진리를 실현하려는 좋은 이상을 가졌다 해도, 어느 곳에나 방해 세력은 늘 숨어 있게 마련이다. 이 효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아랫사람이자 유능한 육이가 군주로부터 신임과 총애 받는 것을 시기 질투하여 급기야는 방해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그렇지만 이 효는 내면적으로는 곧은 덕[陽位]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병사를 잠복시켜 놓고서도 부당한 일을 하는 자신이 끝내는 이길 수 없으리라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주춤거리는 것이다. 이 효의 위치에서는 자신의 사심을 억누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혹여 현장 책임자인 육이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더라도 참고서 조용히 육이와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조직 전체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구사九四 역시 三과 같은 마음을 품고 二와 五의 상응을 끊으려 한다. 그래서 윗사람이면서도 아래를 공격하는 형상이다. 이 효는 힘이 담을 오를 수 있는 자이며, 제자리가 아닌 데에서 다른 사람과 다투는 자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순종적인 덕[陰位]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육이를 시기하여 담까지 타보지만 의리상 옳지 않은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공격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다. 三은 양위陽位에 처해 오로지 강하기만 하나, 四는 음위陰位에 처해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곤란해지면 다시 제자리도 되돌아 올 줄 아는 자이다, 비록 처음은 잘못 됐으나 후에라도 의義를 두려워하여 잘못을 고친다면 그래도 끝은 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효는 자질이 뛰어난 육이六二의 보좌를 받으며 천지 대동길을 열어가는 주체이다. 이 때 구오九五는 천하를 새 진리로 문명하게 하여 새 세상을 열기에 적임자인 육이를 잘 발탁해 써야 한다. 그러나 육이는 지위가 높지 않으므로 구삼九三과 구사九四의 반발이 생기게 된다. 즉 이 효는 새 문명을 열어 천하를 하나되게 할 적임자인 육이와 함께 해야 하는데, 三·四 두 양효陽爻의 반발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구오九五는 의리가 곧기 때문에 그 분함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처음에는 울부짖고 호통치는 것이다. 그러나 삿된 것은 정의를 이기지 못하므로 비록 한 순간 막힘은 있을지언정 끝내는 반드시 합하게 된다. 그러므로 뒤에 웃는 것이다. 그리고 三·四가 도리가 아닌 방법으로 막고 넘보니, 정도正道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의리상 큰 병력을 동원해 반드시 이겨야 만날 인연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계사전』에 "군자의 도가 혹 진출하고 혹 은둔하고 혹 침묵하고 혹 말하는데,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른다."고 하였다. 이는 마음속의 정성이 함께 하는 것에는 출처出處와 어묵語默이 같지 않음이 없으니, 진리로써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은 천지가 떨어뜨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교郊란 아주 먼 지역을 말한다. 함께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서로 친하고 더불어 행하지만 이 효는 너무 황폐하고 궁벽하여 함께 하는 이가 없다. 처음에 함께 하는 이가 있으면 말래에는 혹 서로 괴리되어 분열되는 등의 후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애당초 함께 하는 이가 없으므로 결국 뉘우칠 일 자체가 없는 것이다. 즉, 권위는 있으나 실권이 없는 위치에 처한 상구上九는, 천하를 하나 되게 하려는 큰 이상의 건설에 있어서는 적임자인 육이六二와 구오九五의 뒤에서 적극 후원해야 한다. 만약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권력의 중심부에 맴돌면서 야합하는 세력을 기르게 된다면 전체의 이상이 모두 어그러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무릇 사람들과 함께 하는 데에는 매우 크게 통하지 않으면 각기 사사로이 무리를 지어 이로움을 추구하게 되므로 끝내는 분열과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곧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한 사사로운 아낌이 심해질수록 더욱 다른 재앙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상 동인괘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천하의 마음은 만 가지로 다르나 이치(진리)는 하나이다. 군자는 이치에 밝으므로 천하 억조 만백성의 마음 보기를 한 마음처럼 하여 천하의 마음을 통할 수 있다. 군자의 덕은 곧 세상을 문명文明하게 함인데, 문명하면 이치를 밝게 알기 때문에 대동大同할 수 있는 '진리'를 밝힐 수 있다. 또 진리를 올곧게 깨우치면 내면이 강건하고 굳세어져서 사욕을 이겨내고 공심公心을 지킬 수 있으므로 대동의 도를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참진리'로 하나 되게 하려는 뜻을 가진 자는 반드시 '문명이건文明以健 중정이응中正而應'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천지의 정도正道, 군자의 중도中道로 행해가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온 천하의 뜻이 호천금궐의 상제님과 같아져서 진심으로 '조민열복兆民悅服'하게 되는 것이다. 

동인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인다. 

"진실로 사람들과 더불어 진리로 하나 되고자 한다면 천하의 중심 무대, 즉 넓은 무대로 나가는 것에 과감해 져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군자의 바름이란, 천지의 중정中正한 심법을 느껴서 태양과 같은 밝은 본성을 본받아 진리로 세상을 비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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