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혜능

종교정신과 道/불교 2015. 6. 29. 18:06


중국초대:달마대사

2조:혜가대사

3조:승찬대사

4조:도신대사

5조:홍인대사

6조:혜능대사


6조 혜능은 당 태종(太宗) 정관 12년 중국 최남부 지방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은 노씨이며, 3세때 아버지를 잃고 소년시절부터 나무 장사를 하여 늙은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했다. 교육은 별로 받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진실하였다.


어느 날 시장으로 나무를 팔러 가다가 탁발승의 독경하는 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듣던 중 「응당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而生其心)」라는 구절에 홀연히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독경한 스님에게 무슨 경이냐고 물으니 금강경 (金剛經)이라하여 젊은이는 금강경 배우기를 간청하며 자기가 조금 전 듣고 느낀 바의 심경을 이야기 하니 탁발승은 황매산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찾아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젊은이의 발심을 기특하게 생각한 탁발승은 금 열냥을 주면서 노모의 옷과 양식에 충당하여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혜능은 어머니를 편히 모신 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찾아가 뵈옵고 예배하니

“네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라고 묻자


“영남 신주에서 오직 깨달음의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혜능이 대답 하니

"영남인은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는가 하였다”


이에 혜능은


“사람은 남쪽 북쪽이 있지만 불성(佛性)에야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


홍인대사는 이 몇 마디 말로 비범한 큰 그릇인 줄 알았지만 다른 학인들의 눈치를 염려하여 큰 소리로 꾸짖듯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몰아내었다.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홍인대사는 방앗간을 둘러보시게 되었다. 힘이 부족하여 돌을 등에 지고 열심히 방아를 찧는 혜능을 보시고 소견이 쓸만 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혹 나쁜 사람이 너를 해칠까 염려하여 더 말하지 않은 것인데 네가 그 뜻을 알았느냐?”라는 질문에


“예, 저도 스님의 뜻을 짐작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는 문하대중을 모아 놓고 일대의 놀라운 포고를 했다.


“대중은 들으라. 세인(世人)들의 생사가 큰일인데 너희들은 복이나 구하고 있지, 태어나고 죽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는 구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은 스스로 지혜를 보아서 본심의 지혜로운 마음을 게송으로 표현하여 나에게 가져 오라. 만일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대에게 초조 달마대사 이래의 가사(복전의, 예복, 수행자의 옷)와 발우(스님들이 공양 시 사용하는 밥그릇), 그리고 법(진리)을 전하여 육대조사를 삼겠노라” 하였다.


그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오조의 법을 이어받아 육조가 될 자라고 지목을 받고 있던 신수상좌(神秀上座)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대중들이 다니는 복도 벽 위에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붙였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動拂拭 勿使惹塵埃

육체는 지혜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오조 홍인대사는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게송임을 아셨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이 게송을 따라 수행하라고 했다. 혜능은 여전히 방아만 찧다가 어느 사미승이 외우는 신수상좌의 게송을 듣고 아직 깨달음의 진의(眞意)는 증득하지 못했음을 평가하고 그날 밤 글을 잘 모르는 혜능은 동자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부르는 게송을 신수의 게송 옆에 써 달라고 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塵擬埃

지혜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없노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겠는가.

 

혜능의 게송을 본 대중은 놀라며 의아해 하였다. 그리고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육신 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다”라고 수군거렸다.


조사께서는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다음날 방앗간에 가셔서 허리에 돌을 달고 방아를 찧는 노행자에게

“쌀을 얼마나 찧었느냐?”고 물으시니 이에 혜능은“쌀은 찧은지 오래되었사오나 키질을 아직 못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주장자로 방아를 3번 내려치고 돌아 가셨다. 그 뜻을 알고 삼경에 찾아가니 홍인대사는 금강경을 읽어주니 스승의 금강경 해설에 혜능은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이에 홍인대사는 “네가 이제 제 6대조가 되었다. 잘 두호하고 지키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촉을 하셨다. 혜능이 이때 23세로 스승은 실로 큰 용단을 내린 것이다.


의발을 전수한 홍인대사는 혜능을 밤늦게 배웅하며,


"의발전수는 너 까지만 하고 이후로는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라" 당부를 하였다.


당시 제자들은 모두가 수제자인 신수상좌가 전수받을 줄 알았다. 으례히 자기에게 전수될 줄 알았던 신수상좌에게는 실로 청천벽력이었다.


동선사 스님들에게는 부처님의 정법보다는 자기네들이 받들던 신수장좌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였다. 그리하여 혜능으로부터 의발을 뺏고자 하였으며, 무리중의 “혜명”이라는 자는 장군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하였다. 혜명은 대유령 고개에서 혜능을 발견하였고, 이에 놀란 혜능은 의발을 바위 위에 놓고 숲속으로 숨어버렸다.

의발을 찾은 혜명이 의발을 가져가려고 하나 의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혜명은 그제서야 부처님 뜻을 깨닫고, 숲속에 숨은 혜능에게 법을 청하며 혜능은 혜명을 위하여 법을 설하였다.

뒷날 혜명은 혜능의 “혜”자를 피해 “도명”으로 이름을 고치고 평생 스승으로 존경하였다


대유령 고개의 최초 설법은 불법의 승리로 난폭한 신수상좌의 무리로부터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간 혜능은 15년간 숨어 살면서 조사로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5년이 지나 홍법의 때가 온 것을 느낀 혜능은

의발보따리를 지고 정처 없이 떠돌다 광주 땅에 이르러 법성사의 법회에 참석하였다.


이 법회는 도가 높은 인종법사가 수 백명의 행자들을 거느리고 열반경을 가르치고 있었다.혜능은 맨 뒷자리에 앉아 법사의 강연을 기울였다.


때는 늦은 여름. 조는 자도 있었고, 작은 소리로 잡담하는 자도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절의 깃발이 펄럭거리니 “깃발이 움직인다.”는 쪽과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쪽의 논쟁이 커져 두 패로 갈려 시Rm러워 졌다.

인종법사는 강연을 멈추고 그들의 논쟁이 어떻게 끝맺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혜능이 빙그레 웃으니 “이분이 뭘 아는 모양인데 이분께 판단해 달랩시다”라고 혜능의 의견을 묻자 혜능은 “그것은 깃발의 움직임도 아니요, 바람의 움직임도 아닙니다. 지 두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멀리서 이를 지켜본 인종법사는 혜능의 대답이 간략하고 이치가 뛰어난데 감동을 받고 다가와 6조 혜능임을 알아보고, 크게 놀라 예를 갖추고 그들 스승으로 모셨다.


혜능은 인종법사를 제자로 삼고 선종을 크게 부활시켰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바로 “선”을 전하려 함이니 6조 혜능에 이르러 그 이 이루어 진 것이다.

그의 사상과 언행은 제자들에 의해 “6조단경”이란 책으로 엮어 졌으니 국스님이 낸 경전으로 유일한 불학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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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는 석가모니에 28대 제자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선은 찾아서

중국으로 건나와 중국에서 조초가 된다

 

중국초대:달마대사

2조:혜가대사

3조:승찬대사

4조:도신대사

5조:홍인대사

6조:혜능대사

 

 

 

 

6조 혜능은 당 태종(太宗) 정관 12년 중국 최남부 지방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은 노씨이며, 3세때 아버지를 잃고 소년시절부터 나무 장사를 하여

늙은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했다.

교육은 별로 받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진실하였다.


어느 날 시장으로 나무를 팔러 가다가

탁발승의 독경하는 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듣던 중

「응당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而生其心)」

라는 구절에 홀연히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독경한 스님에게 무슨 경이냐고 물으니

 금강경 (金剛經)이라하여 젊은이는 금강경 배우기를 간청하며

자기가 조금 전 듣고 느낀 바의 심경을 이야기 하니

탁발승은 황매산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찾아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젊은이의 발심을 기특하게 생각한 탁발승은

금 열냥을 주면서 노모의 옷과 양식에 충당하여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혜능은 어머니를 편히 모신 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찾아가 뵈옵고 예배하니

“네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라고 묻자


“ 영남 신주에서 오직 깨달음의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혜능이 대답 하니

" 영남인은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는가 하였다”


이에혜능은

“ 사람은 남쪽 북쪽이 있지만 불성(佛性)에야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


홍인대사는 이 몇마디 말로 비범한 큰그릇인 줄 알았지만

다른 학인들의 눈치를 염려하여 큰 소리로 꾸짖듯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몰아 내었다.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홍인대사는 방앗간을 둘러보시게 되었다.


힘이 부족하여 돌을 등에 지고 열심히 방아를 찧는 혜능을 보시고

소견이 쓸만 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혹 나쁜 사람이 너를 해칠까 염려하여

더 말하지 않은 것인데 네가 그 뜻을 알았느냐?] 라는 질문에

「예 저도 스님의 뜻을 짐작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는 문하대중을 모아 놓고 일대의 놀라운 포고를 했다.


“대중은 들으라. 세인(世人)들의 생사가 큰 일인데 너희들은 복이나 구하고 있지,

태어나고 죽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는 구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은 스스로 지혜를 보아서 본심의 지혜로운 마음을 게송으로 표현하여 나에게 가져 오라.


만일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대에게 초조 달마대사 이래의 가사(복전의, 예복, 수행자의 옷)와

발우(스님들이 공양 시 사용하는 밥그릇),

그리고 법(진리)을 전하여 육대조사를 삼겠노라” 하였다.


그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오조의 법을 이어받아

육조가 될 자라고 지목을 받고 있던 신수상좌(神秀上座)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대중들이 다니는 복도 벽 위에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붙였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動拂拭 勿使惹塵埃

육체는 지혜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오조 홍인대사는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게송임을 아셨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이 게송을 따라 수행하라고 했다.


혜능은 여전히 방아만 찧다가

어느 사마승이 외우는 신수상좌의 게송을 듣고

아직 깨달음의 진의(眞意)는 증득하지 못했음을 평가하고

그날 밤 글을 잘 모르는 혜능은 동자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부르는 게송을 신수의 게송 옆에 써 달라고 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塵擬埃

지혜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없노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


혜능의 게송을 본 대중은 놀라며 의아해 하였다.

 그리고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육신 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다”라고 수군거렸다.

 

 

조사께서는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다음날 방앗간에 가셔서 허리에 돌을 달고 방아를 찧는 노행자에게

 “쌀을 얼마나 찧었느냐?”고 물으시니


이에 혜능은“쌀은 찧은지 오래되었사오나 키질을 아직 못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주장자로 방아를 3번 내려치고 돌아 가셨다.

그 뜻을 알고 삼경에 찾아가니 홍인대사는 금강경을 읽어주니 스

승의 금강경 해설에 혜능은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이에 홍인대사는 “네가 이제 제 6대조가 되었다.

잘 두호하고 지키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촉을 하셨다.

혜능이 이때 23세로 스승은 실로 큰 용단을 내린 것이다.  

의발을 전수한 홍인대사는 혀능을 밤늦게 배웅하며,

"의발전수는 너 까지만 하고 이후로는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라" 당부를 하였다.

 

 

당시 제자들은 모두가 수제자인 신수상좌가 전수받을 줄 알았다.

 으례히 자기에게 전수될 줄 알았던 신수상좌에게는 실로 청천벽력이었다.


동선사 스님들에게는 부처님의 정법보다는

자기네들이 받들던 신수장좌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였다.

그리하여 혜능으로부터 의발을 뺏고자 하였으며,

무리중의 “혜명”이라는 자는 장군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하였다.


혜명은 대유령 고개에서 혜능을 발견하였고,

이에 놀란 혜능은 의발을 바위 위에 놓고 숲속으로 숨어버렸다.

 

의발을 찾은 혜명이 의발을 가져가려고 하나 의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혜명은 그제서야 부처님 뜻을 깨닫고,

숲속에 숨은 혜능에게 법을 청하며 혜능은 혜명을 위하여 법을 설하였다.

 

뒷날 혜명은 혜능의 “혜”자를 피해

“도명”으로 이름을 고치고 평생 스승으로 존경하였다


대유령 고개의 최초 설법은 불법의 승리로

난폭한 신수상좌의 무리로부터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간 혜능은 15년간 숨어 살면서 조사로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5년이 지나 홍법의 때가 온 것을 느낀 혜능은

 의발보따리를 지고 정처없이 떠돌다 광주땅에 이르러 법성사의 법회에 참석하였다.

 이 법회는 도가 높은 인종법사가 수백명의 행자들을 거느리고 열반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혜능은 맨 뒷자리에 앉아 법사의 강연을 기울였다.


때는 늦은 여름.

조는 자도 있었고, 작은 소리로 잡담하는 자도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절의 깃발이 펄럭거리니 “깃발이 움직인다”는 쪽과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쪽의 논쟁이 커져 두패로 갈려 시꺼러워 졌다.

인종법사는 강연을 범추고 그들의 논쟁이 어떻게 끝 맺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혜능이 빙그레 웃으니

“이분이 뭘 아는 모양인데 이분께 판단해 달랩시다”라고 혜능의 의견을 묻자

혜능은 “ 그것은 깃발의 움직임도 아니요, 바람의 움직임도 아닙니다.

 단지 두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멀리서 이를 지켜본 인종법사는

혜능의 대답이 간략하고 이치가 뛰어난데 감동을 받고 다가와

6조 혜능임을 알아보고, 크게 놀라 예를 갖추고 그들 스승으로 모셨다.


혜능은 인종법사를 제자로 삼고 선종을 크게 부활시켰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바로 “선”을 전하려 함이니

6조 혜능에 이르러 그뜻이 이루어 진 것이다.


그의 사상과 언행은 제자들에 의해 “6조단경”이란 책으로 엮어 졌으니

 중국스님이 낸 경전으로 유일한 불학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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