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의 황금가지

개밥그릇/참마음 2014. 7. 10. 16:44


신화의 렌즈로 인간 정신의 본질을 밝히다

 

 서명 : 황금가지(1, 2)

 글쓴이 : 권희정(상명사대부속여자고등학교 철학 교사)

 저/역자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 박규태 옮김

 출판사 : 을유문화사




시대를 넘어 생명력을 더해가는 모든 학문에는 위대한 원류가 존재한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의 용법을 빌려 신화학에 적용하면 어떨까? 모든 신화학자들은 주저 없이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1854~1941)를 꼽을 것이다. 플라톤이 철학에 던진 현상계와 이데아계의 개념 지도는 그것을 따르는 자에게도, 벗어나려는 자에게도 숙명처럼 놓여진 출발선이다. 마찬가지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를 저술한 프레이저의 신화학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890년 이래 서양 지성사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 범위는 신화학, 인류학, 민족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신분석학, 철학, 역사학, 문학 비평에 이르기까지 매우 방대하다.


프레이저 이전 시기만 해도 신화 연구는 그리스나 로마 또는 중근동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네팔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전설과 신화들을 모아 비교 정리하였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에 나가있는 행정관, 군인, 선교사, 학자들과 편지를 나누고 관찰 자료들을 수집하여 신화 연구의 영역을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여러 나라에 걸친 종교, 주술, 제의, 신화의 기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주요한 본질적 유사성을 밝혀내려 하였고, 그 속에서 영혼불멸과 죽음의 부정, 풍요의 기원 등 인류의 보편적 테마를 추출하였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테마들은 “인간의 기억이 미치지 않은 태고적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규칙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인간정신은 오늘날이든 원시시대든 본질적으로 유사하며 최초의 소박한 삶의 철학이 점차 다듬어져 오늘날과 같은 인간정신으로 발전”한 것이다. 신화와 전설 속에 담겨 있는 원초적 인간 정신이 세계적인 보편성과 역사성을 가졌다는 것이 밝혀지자 신화학은 인류학과 만나게 되었고, 본격적인 학문의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바로 이 기념비적 저작인 『황금가지』는 1890년(2권)에 처음 출간되었고, 1900년(3권)에 2판이 나왔다. 그 후 1906년부터 1915년에 걸쳐 서술한 3판에서는 총 12권 분량의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며, 이것을 대중화하기 위해 부인의 도움을 받아 한 권으로 압축된 축약본을 1922년에 출판하였다(박규태 번역의 본서가 바로 이 책이다). 그리고 1936년에는 3판의 내용에 한 권을 보충하여 전체 13권으로 완성하였다. 거의 백과사전에 맞먹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황금가지』는 프레이저가 평생을 바쳐 공들인 역작이다. 프레이저의 친구인 하우스먼의 비유에서처럼 이 책도 나무가 자라듯 프레이저의 일생을 거쳐 끊임없이 자란 셈이다. 


『황금가지』는 로마 근교의 작은 마을 아리키아 지역의 신화에서 시작한다. 아리키아 주변에는 네미라 부르는 호수가 있고, 이 호숫가에는 작은 숲이 있다. 이 숲에는 야생동물의 수호여신이자 가축과 대지의 여신, 그리고 남녀의 생식과 농업, 해산의 여신인 디아나의 신전이 있다. 그리고 신전 안에는 디아나와 그의 연인 비르비우스가 함께 모셔져 있다. 이 신전을 지키는 사제는 ‘숲의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디아나의 연인이자 신전 앞에 있는 성스러운 나무의 영혼으로 숭배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제이자 동시에 살인자이다. 누구든 사제가 되고자 하는 자는 기존의 사제를 죽여야만 사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침입자가 나타나 황금가지라 불리는 성스러운 나무가지를 꺾고 약한 왕과 결투를 벌여 그를 살해하면, 이제 자신이 새로운 왕이 되어 그 지위를 이어받는다. 그래서 이 숲의 왕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밤낮으로 신전과 나무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그 나무가 무사한 동안에는 사제도 습격을 받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렇게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비극의 반복으로 사제직이 계승되는 것이 바로 이 성소의 규칙이다. 


프레이저 신화 연구의 출발점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서 시작된다. “도대체 디아나의 사제인 숲의 왕은 왜 전임자를 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왜 전임자를 살해하기에 앞서 베르길리우스의 황금가지와 동일시되었던 어떤 나뭇가지를 꺾어야 했는가?” 


프레이저의 연구자인 로버트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신성한 왕의 살해’사건과 ‘황금가지’의 미스터리들을 풀어가는 과정을 한 편의 추리 소설에 비유하였다. 네미의 의식을 둘러싼 매듭의 실타래는 서로 다른 역사시대의 수많은 문화 속에서 관찰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동원하여 풀어나간다. 그리고 때로는 탐정처럼, 또는 법정의 변호사처럼 추리의 과정을 밟는다. 이 모든 단서를 거친 후 사건의 전모는 책의 말미에 가서야 밝혀진다. 프레이저는 신화적인 제의를 실행하는 원시인들의 행위를 심리학적 추론을 통해 살펴보았는데, 그 과정을 서술하는 그의 뛰어난 문학적 표현력도 로버트 프레이저와 같은 평가를 내리게 하는 데 한 몫 했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이 두 가지 특징은 프레이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프레이저가 밝혀낸 네미의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원시인의 관념에서 숲의 왕은 인간과 신을 중개하는 사제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 신 그 자체로서 숭배받기도 하였다. 원시인들은 인신(人神)인 사제왕을 초자연적 존재로 인식하였는데, 그에게는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미쳐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주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왕의 운명은 부족의 운명과 동일시된다. 건강하고 정력적인 왕은 자연과 인간의 생산성을 보장하지만, 노쇠한 왕은 질병과 장애를 가져오리라 믿었다. 따라서 쇠약한 왕은 적당한 시기에 살해되고 강한 왕이 등장해야 한다. 신성한 왕의 살해는 제의적 살해로 나타났는데, 이 행위는 부족의 장래를 위해 행해지는 비인격적이고 거룩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후대에 이르면 제의적 살해는 사제왕의 자식이나 노예, 포로, 동물 희생 또는 인형 등으로 대치되고 나중에는 상징적 희생 의식만이 남게 된다. 프레이저는 방대하게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이런 의식이 보편적으로 벌어졌음을 밝혀나간다.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 신화나 예수의 십자가 처형도 한 예로 거론되고 있다. 


왕의 죽음은 농경 제의에서 좀더 다이내믹한 신화적 스토리로 드러난다. 생식과 풍요를 염원하는 농경문화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식물의 생명 과정을 매년 죽었다가 부활하는 신으로 인격화하였다. 서아시아의 탐무즈와 아도니스, 로마의 아티스, 이집트의 오시리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등에 관한 신화는 모두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 신들이 죽음을 맞는 계절이 되면 대지는 황무지가 되고, 신이 재생하는 계절이 오면 다시 세상은 풍요로 변한다. 풍요가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여인들은 이 신들을 맞이하는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황금가지를 꺾고 숲의 왕을 살해한 사건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이다. 네미 숲의 왕도 대지의 풍요를 보장하려면 병이 들거나 노쇠해져선 안 된다. 신이 죽음을 통하여 재생하듯이 네미 숲의 왕도 새로운 왕에 의해 정기적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계절과 함께 죽고 재생하는 풍요 신화의 드라마가 네미 숲의 왕을 통해 재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떡갈나무에 붙어사는 기생목인 황금가지는 겨울에도 황금색을 띤 노란 색의 꽃을 피운다. 원시인들에게는 태양빛으로 보였기에 곧 천공신의 속성으로 생각되었다. 새로운 왕이 황금가지를 꺾는 것은 디아나의 연인으로서의 천공신 자격을 얻는 셈이 된다. 프레이저가 이탈리아의 조그만 공간, 네미 숲의 전설에 주목했던 이유는 그 전설 자체의 사실성을 추적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술과 종교의 근원적 속성을 파헤치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스토리는 이 책의 중심 가지일 뿐이다. 그가 제시한 주술의 원리는 현대에도 존재하는 비합리적 사고를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유사의 법칙에 입각한 모방 주술이나 접촉의 법칙에 입각한 감염 주술은 입시를 치르는 학생에게 엿을 준다거나 이빨을 뽑아 지붕위로 날리면서 까치에게 물어가라고 하는 행위의 상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프레이저는 주술과 풍요신화의 상징을 풀어나가면서 터부, 나무 숭배, 날씨 주술, 희생 제의, 육식 제의, 유럽의 불축제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대의 주술적 제의와 형식들의 의미를 밝혀 주었다. 이 이론들은 각 문화의 유사성을 비교 연구하여 후대의 다양한 학문에 풍부한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터부에 관한 내용은 프로이드의 『토템과 터부』에 영향을 끼쳤고, 인간 정신의 원형을 심리학적 연구로 계승한 융도 집단무의식 개념을 설명하는 데 프레이저로부터 진 빚이 있다. 르네 지라르도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희생양’의 피가 폭력의 근원으로 모든 문화의 심층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은 현대적 관점을 고려할 때 몇 가지 요소를 걸러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상이 주술에서 종교로 발전하고 이어 종교는 과학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그의 진화론적 관점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또한 고대인의 사고를 ‘미개인’의 것이라 폄하하는 것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를 필두로 한 구조인류학자들로부터 반박 당하였고,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세계를 제패하던 영국인의 시각임을 감안할 때 제3세계 문화권의 신화에 대한 부주의가 간혹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해석은 또한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출판인 맥밀런에게 프레이저가 보낸 편지에서 “독자들이 이러저러하게 자기 스스로 결론을 끌어내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했던 것처럼 신화의 상징을 파악하고 재현하는 일은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우리 시대의 정신에도 작용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1권 : 870쪽| 32,000원

2권 : 776쪽| 30,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