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積善)

개밥그릇/참마음 2015. 3. 21. 16:31


선도(仙道)파의 중요한 덕목중 하나는 적선(積善)이다. 중국 도교(道敎)의 한 유파는 아예 적선을 가장 중요한 종교행위로 여기기도 한다. 일종의 적선파(積善派)다. 적선파란 좋은 일을 행함으로 인해 당사자가 지닌 운명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수양하는 집단이다. 이것은 <포박자>의 ‘대속편(對俗編)’이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조왕신(일종의 부뚜막신, 한국에도 꽤 널리 알려진 신(神)이다.)이 60일에 한 차례씩 돌아오는 경신(庚申)일에 하늘의 공덕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올라가 그 집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선행(善行)이나 악행(惡行)을 보고하고 그에 대해 수명이나 부귀를 정해준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인과설(因果說)과도 관계가 깊은 얘기다. 이것이 세간에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남송(南宋) 초기에 이창령(李昌鈴)이라는 도사(道師)가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을 저술하면서 부터이다.

명(明)시대에 들어오면 ‘태미선군공과격(太微仙君功過格)’이나 ‘관성제군각세진경(關聖帝君覺世眞經)’등의 적선 및 선행 지도서가 백성들 사이에서 대유행하였다. 이것을 최종적으로 정립하고 굳건히 확립한 사람이 원료범(袁了凡)이다.

원황(袁黃: 1533~1606), 요범(了凡)선생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던 학해(學海; 원요범 선생의 첫 아호)선생은 모친의 뜻에 따라 과거시험을 접고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후에 자운사(慈雲寺)라는 절에 놀러갔는데 운남(雲南; 지금의 중국 운남성)사람으로 공(孔)씨라는 한 노인을 만난다. 그는 긴 수염에 위품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로 표표히 날아오를 것만 같은 신선의 풍모(風貌)를 지니고 있었다.

공노인은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皇極神數; 주역의 상수학적인 면을 점술적인 면에서 굉장히 세밀하게 다듬은 신기한 점술책)를 마스터한 사람으로 먼 남쪽, 운남지방에서 알지 못하는 원료범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원료범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모친의 뜻에 따라 의술을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귀군은 내년에 관리가 될 운명이다.”
원료범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공노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여러 가지 의문사항을 물어본다. 그러자 공노인은 정성스럽게 점을 쳤다.

그에 의하면, 현(縣)의 시험에는 14등으로, 부(府)의 시험에는 72등으로, 성(省)의 시험에는 9등으로 합격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 다음해에 시험 삼아 쳐 보았는데 모두 노인의 말대로 되었다.) 공노인은 정성스럽게 예의를 갖추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원료범을 갸륵하게 보았던 모양이다. 그의 일생을 점(占)으로서 예언해 주었다. 그에 의하면,

어느 해에는 시험에 몇 번째로 붙고, 어느 해에는 관청에서 어느 정도의 녹봉을 받을 것이며 어느 해에는 공사(貢士)의 지위에 오르고 어느 해에는 사천성의 장관에 선출되는데 2년 만에 휴가를 받아 귀향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은 53세의 8월 14일, 축시(丑時)에 자택에서 생애를 마친다. 안타깝게도 자식은 없다.

원료범은 그 후 공노인의 말을 모두 기록해두고 마음속에 늘 새겼었다. 그 이후로 진행된 모든 일들이 공노인의 예측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단지 녹봉 91석 5두를 받고, 공사(貢士)로 추천된다는 대목만 녹봉 70석으로 추천되었다. 정말 한치의 의혹도 없이 정확히 맞아 들어가던 공노인의 점내용이 틀려버렸구나 하고 의심하게 되었는데 그 후 양공(揚公)이란 사람에게 방해를 받아 취소되어 버렸다. 그 뒤 다시 추천을 받아 진짜로 공사가 되었는데 정말 91석 5두였다.

이후로 원료범은 완전한 운명론자가 되었다. 모든 일에 조바심을 내지 않았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 언제나 초연했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때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담담하게 일상을 영위하면서 틈나면 정좌한 채 좌선에만 몰두하였다. 일체의 모든 일에 운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버둥대는 일이 없어졌다.

원료범이 어느 해 서하사(捿霞寺)의 운곡선사(雲谷禪師)를 찾아뵈었다. 3일 밤낮을 선사와 마주하여 지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 정좌하여 털끝만한 잡념도 없어 보이자 운곡선사가 원료범을 보고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다. 이에 원료범은 지금까지의 경위를 모두 설명하고 모든 일을 운명대로 담담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사는 운명에 얽매인다는 것은 범인(凡人)들이 하는 것이며 지극히 뛰어난 성인(聖人)은 운명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음을 각인시켰다. 이에 원료범은 그 방법을 물었고 선사는 그 방법이 적혀 있던 공과격(功過格) 한 권과 준제주(準提呪)라는 주문(呪文)을 주었다.

원료범은 선사가 일러준대로 공과격에 의거해서 날마다 선행을 하며 준제주를 외웠다. 그랬더니 그후부터 그의 운명은 서서히, 공노인의 점괘와는 달리 진행되었다. 가질 수 없다는 자식을 얻고 53세에 죽는 다는 예언은 빗나가 69세가 되었는데도 기력이 정정하였다. 관직은 점점 더 올라가 사천성의 장관직에서 끝난다는 예언은 틀려버렸다.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응품군(宗應品軍)의 주사(主事)로서 이여송과 함께 참전하였고 함경도에서 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대군을 무찌르기도 했다. 그는 74세까지 살았으며 자신의 아들, 천계(天啓)에게 유훈(遺訓)형식으로 요범사훈(了凡四訓)을 남겼다.

이상의 내용은 중국 선도서(仙道書)에 나오는 얘기를 대강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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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생이 ‘그대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자식을 낳지 못할 운명이오’라고 말한 것은, 바로 하늘이 내린 숙명(宿命)으로서, 피할 수 있는 것이오. 그대가 지금 덕성을 확충하고 좋은 일에 힘써 음덕을 많이 쌓는다면, 이것은 바로 스스로 짓는 복이니, 어찌 복록을 받아 누리지 않을 수 있겠소? .... 중략 .... 만약 천명(天命)이 한번 정해진 대로 따라야 할 뿐, 누구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법칙(宿命論)이라면, 길함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으며, 흉함은 어떻게 피해갈 수 있겠소? 주역을 열면 제일 첫머리에 등장하는 구절이 곧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남아 넘치는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법칙(義理)이오. 그대는 이 말을 믿을 수 있겠소?“ 31~32쪽

이 책에 나오는 운곡선사가 원료범에게 하는 훈계 섞인 대화내용이다. 공노인의 말대로 운명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면 무엇하러 구차하게 살겠는가? 거지의 운명이라면 거지처럼 살아갈 것이고 살인범의 운명을 태어났다면 살인범처럼 살아가면 될 것이리라. 사주팔자를 연구하면서 늘 나를 괴롭히는 의문이 있었다. 팔자의 예언대로 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 없다면 이는 슬픈일이다. 일전에 한번 어떤 책의 독후감에다 이런 생각을 말했지만 운명이 완전히 정해지지는 않았다.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아 지키면서 선행을 많이 쌓고 좋은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운명의 절반 가까이는 바꿀 수 있음이라.

원료범은 제2장에서 과오 회개의 방법으로서 세 가지를 제시했다.

①개과하려는 사람은 첫째로, 부끄러운 마음(恥心)을 가져야 한다.
②개과하려는 사람은 둘째로, 두려운 마음(畏心)을 가져야 한다.
③개과하려는 사람은 셋째로, 모름지기 용맹심(勇心)을 발휘해야 한다. 41~43쪽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세간의 일들이 하나같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해괴한 짓들이 많은데 이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행동과 마음의 죄악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도교의 연례의식에서도 나타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천지신명이 굽어 살피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양심이 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회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독한 의지로써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스스로 용맹정진, 분발하여 자신의 허물을 씻고 선업을 쌓아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며 나중에는 마음이 하자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운곡선사가 원료범에게 선사한 공과격(功過格)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점의 공덕으로부터 100점의 공덕을 항목별로 나열하고 그 반대편에 1점의 죄악으로부터 100점의 죄악을 나열하여 매일 매일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기록한 다음 월별로, 그리고 마지막 섣달 그믐날에 1년 동안의 선행과 악행의 점수를 비교하여 하늘에 고하고 다음해에는 더욱 분발하여 선행만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원료범은 유불선(儒彿仙) 삼교합일(三敎合一)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니만큼 당시의 시대조류를 따라 이런 것에 정통했으리라 보인다. 그의 공과격엔 사람을 죽이면 100점의 죄악을, 한 사람을 살리면 100점의 선행 점수를 얻게 되어 있었다. 또한 낙태 하는 것을 50점의 죄악과 선행으로 나누고, 근거없는 비방과 험담은 30점의 선악의 점수를 준다. 한 사람의 배고픔을 구제해주는 것은 1점의 선악으로 구분한다.

이런 식의 항목별 비교는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시대에 맞게 잘 고쳐서 스스로를 경책(警責)한다면 진실로 자신은 물론이고 사회의 밝은 면을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선사할 지도 모를 일이다.

부록에는 유교와 불교, 도교의 갖가지 선행권장문들이 실려 있다.

원료범의 요범(了凡)은 자신의 대에 운명에 휘둘리는 평범을 끝마친다는 일념 으로 아호를 학해(學海)에서 요범(了凡)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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