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발생 지도

민족문화대학/역사 탐구 2010. 12. 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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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유역으로만 발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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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서

종교정신과 道/선천종교의 모습들 2010. 12. 20. 20:06

도마복음서

도마복음서는 1945년 나일강상류 니그 함마디 라는 곳에서 발견된 문서중 하나이다. 니그 함마디 문서-45년 이집트에서 발견 총 52종의 문서로 되어 있다. 신약성서학과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연구의 중요자료이며 이집트의 고대어의 하나인 콥트어로 기록되어 있다. (사해 사본:1947년 시해 발견 ,히브리 성서((구약)와 유대교 관련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제작연대 :ad 350년경 필사된 것으로 추정, 복음서내용상 연대는 100년 전후로 요한복음과 같은 시대로 추정되나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50-60년대 까지 거슬러 간다.

<Q복음서:5~60년> <마가 :6~70년> <마태 ,마가 :70년~80년대><>

 

도마복음의 특징들

1.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참뜻과 참된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다.

2.기적. 예언의 성취, 종말, 재림 , 부활 , 십자가, 심판의 개념이 없다.

3.믿음이 아닌 깨달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빛이 되어 내안에 게신 하나님을 아는것이 깨달음이고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을 강조 믿음단어가 90번 이상 나오나, 도마서는 깨달음 “gonosis”강조-믿음이란 단어는 도마서91절에 한번 나옴.

4.우리는 모두 우리속에 신성을 고유하고 있다는 사상

5.가현설을 배격하고 수유을 인정하고 있다

6.대속적 기독론을 배격하고 있다

7.도마서는 복음서 주요 말씀과 50%정도 유사하다.

8.도마서의 깨달음은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 prajna=반야, 통찰, 지관, 꿰뚫어봄과 같은 개념이다.

9.도마서를 3세기 유행했던 영지주의 성서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도마서의 영지는 다른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면 도마서의 영지는 깨달음 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나 3세기에 유행 하던 영지주의는 헬레니즘의 영혼 불멸 사상의 영향으로 물질적인 육적인 것을 모두 악으로 규정하여 인간의 영혼이 악한 물질세계에 갇혀 있기에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영지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10.도마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적은 “어록“이다.

11.도마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깨달음을 통해 내속에 있는 천국, 하나님, 참나를 발견 하므로서 자유와 해방을 얻고서 새 생명으로 태어나자는 가르침에 충실한 복음서.

12.도마서는 모두 114절로 되어 있다.

13.도마 공동체는 유대 공동체는 아닌 것 같다.

14.도마서는 “하늘나라“라는 단어가 3번만 나옴, 도마서는 나라 ,아버지의나라 라고 쓰여 다. 즉 도마서는 나라=천국을 물리적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http://blog.naver.com/jsh929/100099846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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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스님, 현각. 한국을 떠나다

종교정신과 道/선천종교의 모습들 2010. 12. 13. 21:40

하버드 출신의 미국인 승려 현각이 끝내 한국을 떠났다.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과도한 관심과 세간의 이목이 부담스럽고 수행에 방해가 된 탓이 아닌가 한다.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서양인 스님인 자신을 구경하려 몰려오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그가 역정을 내며 한 말이다.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서 말씀을 너무 짧게 하시더라. 모처럼 스님 말씀 들으러 온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수도승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일전에 종교 포럼에서 프랑스 패널 한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하셨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평화 대신 전쟁, 갈등과 환경만 파괴하는 종교는 이제 버려야 한다. 2010년이 되었는데 인간이 여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스님 또한 불교에 몸담고 계시지 않나.
"이건 껍질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를 만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찌보면 종교조차 넘어선 일종의 초월자들이었다. 기독교는 예수의 사후에 인간들이 종교를 사리사욕에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신앙이 윤리로 가야 한다는 말은, 예수나 부처에 대한 신격화 혹은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이다.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종교가 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였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왜 한국을 떠나셨나.
"아까 보지 않았나. 법당에서 기도하시던 분들이 연예인이 온 줄 알고 달려나오더라. 내 죄다. 애초에 내가 무슨 계획을 세워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로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매스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니 법회, 특강, 주례,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폭풍인기에 한몫했다.
"그래서 창피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나.
"2004년 숭산 스님 열반하시던 날. 바로 떠났어야 했는데 한국 불교의 세계화라는 은사 스님의 일이 안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한국 불교계와 갈등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

―스님은 늘 한국 불교를 예찬만 하시더라. 떠나 계시니 이제 쓴소리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가르침만 받았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지 마시고 한 말씀 해달라.
"당신이 미국 우리 집에 와서 2~3주 살다 나가면서 저 집은 이렇더라 저렇더라 흉보면 우리 가족은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법이다.
폴 뮌젠이 본명인 현각은 미국 뉴저지의 보수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 중 일곱째였던 현각은 예일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에 심취했고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다.

하버드 재학시절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숭산 스님을 처음 뵙던 날, 스님께선 다짜고짜 나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라고 물으셨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스님은 ‘하버드 학생이 당신 자신을 모른단 말인가?’ 하며 껄껄 웃으시더라. 그 한마디 질문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내가 수년동안 여러 명문대학을 전전하며 찾으려 했던것, 깨달으려 했던것은 결국은 ‘나 자신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만행’ 책에 보니 유달리 총명했던 아들에게 부모님 기대가 엄청났더라.
"삭발하고 처음 집에 들어간 날 부모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보단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지만 아쉬움은 여전하시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그 뒤로 너의 동창 몇이 서 있더구나, 하고."

-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 오늘날까지도. 난 반듯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나.
"음…. 누가 그림을 잘 그리듯이 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미’와 ‘도전’이 중요했다.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 말씀대로 살지만, 난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남들 기대에 따라 사는 것, 예측 가능한 결과는 얼마나 재미없고 무료한가."

―정치를 하셨어도 잘했을 것 같다.
"그런 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정치를 했다면 나의 내면은 죽어버렸을 것이다. 겉으로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과연 행복했을까?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나?"

―즐거워 보이신다. 에너지 넘치고.
"보이는 대로다. 많은 종교들이 형식과 틀, 어떤 룰을 강조하는데 불교는 다르다.  나는 스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법정 스님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2004년 봄, 스님이 나를 길상사로 부르셨다. ‘깨달음의 거울’이란 책을 주시며 영문으로 번역해달라 부탁하셨다. 고사했다. 난 학자도 아니고, 한자도 모르는 수도승이지 않나. 그런데 스님이 ‘네가 공부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들었다, 번역할 자격이 있다’ 하시더라. 서산대사가 조선시대에 쓴 책을 서양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직역보단 의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필요 없는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법정 스님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나.
"모범이 되시는 분.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분."

―’저도 스님처럼 외딴 오두막에 살면서 수행정진 하고 싶다.’ 고 하자 법정 스님이 만류 하셨다던데.
"나처럼 키 크고, 코 크고, 얼굴 허연 승려가 와 있으면 이 마을 저 마을로 소문이 나니 어차피 조용히 살기 힘들 거란 뜻이었다."

―오두막에 살고 싶으셨나.
"물론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수행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잠시 외딴 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객들에게 발견되고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역시 법정 스님의 예측대로였다."

―스님의 스승 되시는 숭산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가끔은 아버지였고, 가끔은 어머니였다. 코치이자 트레이너였고, 영웅이자 원수였다."

―원수라면?
"언제나 장난스럽고 인자하셨지만, 때로는 원수처럼 미워질 정도로 날 엄하게 다루셨다. 자신이 지도하는 사람에게 그정도 감정과 감동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은 스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이 혼나셨다 보다.
"처음 책을 냈을 때, 수행자가 수행에 전념하지 않고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쓴다 하여 많이 혼났다. 법정 스님도 젊으셨을 적에 성철 스님에게 같은 이유로 자주 혼이 나셨다고 들엇다."

―가끔 수행하기 싫을 때 있지 않나? 세상에 재미난 일이 많은데.
"세속의 재미는 나타났다 사라진다. 권태에 빠져들기 쉽다. 수행자가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사람들은 달콤한 속세의 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 묻지만 그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 승려의 길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출가하신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토록 원하던 해답인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은 찾으셨는지?
"지금 마시는 이 커피의 향이 참 좋지 않은가." (선문답)

-무슨 뜻인가.
"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 순간… 깨달음도 순간이요, 나태해지는 것도 순간이요, 삶도 한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 순간을 소중히 하고 소중히 할 때야 말로 비로소 나는 온전한 나이다. 아직은 나 역시 스스로의 답을 찾는 수도승인지라, 옮은 답을 말한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전인 ‘순간경’ 과 순간의 깨달음을 중요시한 성철스님의 설법을 듣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출처: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2&articleId=3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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