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의 인연 (4)
개밥그릇 2011. 12. 29. 23:58by hojusaram |
증산도도 사람사는 곳이라서 별별 사람이 다 있다.
대개 80~90년대 신앙하던 사람들은 증산도 문화가 덜 자리잡힌 때라서 기수련, 기체험, 또는 도통이라든지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신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머리도 좋고 지성적으로 뛰어난 엘리트들도 다수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개인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 같다. 증산도는 알고나면 제대로 도를 닦는데인데, 대순진리회식으로 뭔가 눈에 귀신이 휙휙 지나가는 체험들을 하면 큰 체험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밋밋한 신앙 문화에 질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별별 사람들이 있었는데, 수행이나 배례를 비정상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 있을 때 후배하나와 선배 하나가 갑자기 눈이 맞더니 배례를 중심으로 정성수행을 들어간 일이 있었다. 하루에 1000배씩 100일간 정성수행을 했다. 뭐 수행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건 없지만, 나는 순수한 사람 살리고자 하는 마음외에 개인적인 깨달음만 추구하는 마음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지난 어느날 10만배를 채우고 내 앞에 나타나더니, 여러가지 자랑 비슷한걸 하는걸 보았다. 100일 정성공부 배례가 대단하긴 하는가보다.
1000배는 약과다. 그후 어떤 사람은 21일 동안 날마다 5000배씩 했다는 사람도 보았다. 거의 잠도 안자고 배례만 한 것이다. 뭔가 깨달음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별다른 깨달음은 없고 아픈몸은 더욱 아파치고 하는 통에 증산도는 진리가 아니라고 스스로 단정하고 바깥으로 나돌고 있다. 그렇게 해서 도통할 줄 알면 역사상 수많은 수행자들은 배례 많이 하기 경쟁을 했을 것이다.
신앙이 오래되고,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잘못과 실수, 시행착오... 죄와 회심. 등을 겪고 나면서 태을주를 백만독 천만독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은 신앙의 목적이나 자세를 바르게 하고 신앙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보면 훨씬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사부님이 예로부터 사람 인(人)자 6개를 써놓고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같아야 사람이지, 사람이 사람 같지 않으면 사람이냐"고 이야기했다는 말씀이 다시 생각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요즘 정치권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는가? 사람같이 않는 사람이 사람노릇하고, 진짜 사람은 병신밖에 못되는 시대, 이 시대를 선천 상극 시대의 말대 현상이라고밖에 더 이야기하겠는가?
by krawlito |
이건 "해원의 문제"다.
증산도는 증산도고, 세상 돌아가는 것은 세상이고 그렇지가 않다. 상제님 진리를 알고 나면 상제님이 천지공사 틀 봐놓은 그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으로 오신 강증산 상제님의 참 도법이 뭔지 세상의 운로, 세운(世運)과 도판(종교판)의 운로 도운(道運)에서 그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상제님 진리의 번지수를 알고 신앙을 해야 한다. 유불선을 비롯한 선천에 이름이라도 있는 모든 도법을 가져다 쓰신 상제님.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작은 알량한 지식으로 상제님 진리를 재단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웃기는 것이다. 유교 불교 기독교에서도 각 교의 창교주를 우습게 하면 안되지 않는가?
상제님은 100년의 시간을 두고 세계 만민이 해원해서, 선천 5만년간의 원한의 역사를 모두 정리하도록 해놓으셨다. 심지어는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증산도 道典 4:48)고 하시며 파리까지도 해원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그에 대한 참된 깨달음이 열릴 때까지 진리를 제대로 파야 한다. 상제님을 모르고, 앉아가지고 세상 사람 살릴 궁리는 안하고, 개인적인 깨달음만 추구한다 하면 신명들이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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