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경록의 유식사상 소고-박인식

종교정신과 道/불교 2016. 9. 11. 23:39


종경록의 유식사상 소고-박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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ꡔ종경록(宗鏡錄)ꡕ 유식(唯識)사상 소고




박인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Ⅰ. 서론



ꡔ종경록(宗鏡錄)ꡕ 100권은 중국 오대(五代)시기 오월(吳越)지방에서 활동했던 법안종(法眼宗)의 승려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가 편찬한 책이다. 연수가 쓴 서문에 따르면, 그가 ꡔ종경록ꡕ을 편찬한 목적은 ‘일심을 들어 종지[宗]로 삼아 만법을 거울[鏡]처럼 비추기(擧一心爲宗, 照萬法如鏡)’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 기존의 경과 논 등의 원만한 가르침을 간략히 추려 기록[錄]하였다고 말한다. ꡔ종경록ꡕ100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은 ‘종지를 드러내는 부분[表宗章]’, 다음은 ‘문답으로 의심을 없애는 부분[問答章]’, 마지막은 ‘참된 말씀을


인용하여 원만한 믿음을 이루는 부분[引證章]’이다. 그가 표종장에서 밝히고 있듯이, ꡔ종경록ꡕ에서 선양하고자 하는 종지는 바로 일심(一心)이다. 즉 그는 일심사상을 통해 유식학, 화엄학, 천태학 등의 교학 및 선종 등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사상기반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이런 시도를 선교일치(禪敎一致)라고 부를 수 있다.


ꡔ종경록ꡕ에는 특히 유식학과 관련된 글이 상당부분 등장하는데, 우선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사상에 유식학설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명연수는 이 유식학설에서 이른바 현상계의 사물을 두루 비출 수 있는 중요한 사상적 근거를 발견하여 그것을 이른바 ‘거울[鏡]’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ꡔ종경록ꡕ의 궁극의 종지이자 모든 사물을 비추는 근거인 일심(혹은 진심)과 회통시키려 했다.


이 회통의 과정에서 연수는 정통 유식학과는 다른 내용을 지닌 유식학을 제기하는데, 그로 인해 연수는 정통 유식학 내에서 철학적으로 제기되는 어떤 문제들을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논문에서는 연수가 제기한 유식학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다음으로 그것이 기존의 유식학체계내에서 어떤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지와 연수가 어떠한 근거와 관점에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지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ꡔ종경록ꡕ내에서 유식학이 어떻게 전체종지인 일심의 논리에 의해 회통되는지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Ⅱ. 종의 거울[宗鏡]에 대한 두 가지 논의


ꡔ종경록ꡕ 권10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답이 등장한다.


문. 지금 ꡔ종경록ꡕ은 경(鏡)으로서 뜻을 삼는데, 이는 법상종(法相宗)에 의거하여 세운 것인가? 아니면 법성종(法性宗)에 의거하여 세운 것인가?


답. 만약 인연대대문(因緣待對門)에 의거하면 법상종에 의거하니, 곧 본식(本識)을 경(鏡)으로 삼는다. 이는 ꡔ능가아발다라보경ꡕ에서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에 여러 색상이 드러나는 것처럼, 현식(現識)이 있는 곳에서 드러나는 것 역시 이와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현식은 제8식이다. 법성종에서는 여래장을 거울로 삼으니, ꡔ대승기신론ꡕ에서 “다시 각체(覺體)의 모습에는 네 가지의 큰 뜻이 있으니, (그것은) 허공과 같으며 마치 맑은 거울과도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1)


즉, ꡔ종경록ꡕ은 깨끗한 거울이 사물을 분명하게 비추듯, 하나의 근본종지를 통해 일체의 모든 법을 두루두루 원만하게 비추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글이다. 그렇다면 연수가 ꡔ종경록ꡕ에서 세우려는 거울[鏡]은 어떤 학파의 내용을 근거로 삼은 것인가? 연수는 불교내의 여러 학파를 설명하는데 있어 법상종(法相宗), 파상종(破相宗), 법성종(法性宗)이라는 구분을 사용하는데, 이는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이 먼저 사용한 용어들로서2), 법상종은 유식학(唯識學)을 가리키고 파상종은 중관학(中觀學)을 가리키며 법성종은 화엄학(華嚴學)과 선(禪)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3) 인용문에서 연수가 파상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파상종에서는 한결같이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라고 설한다(若破相宗, 一向說非眞非妄)”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파상종의 방식은 뭔가를 긍정적으로 세우려 하기보다는 부정의 정신을 더 강조하기 때문에, 거울로 삼기에 부적절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시 인용문으로 돌아가 보자. ꡔ종경록ꡕ의 거울[鏡]이 어떤 종에 의거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연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답한다. 첫째 인연대대문(因緣待對門)의 차원에서는 법상종에 의거하여 제팔식을 거울로 삼는다는 것이고, 둘째 법성종에 의거할 경우 여래장을 거울로 삼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연대대문(因緣待對門)은 곧 인과 연의 대대관계로 이루어지는 현상의 세계이며, 여래장은 여래의 깨달음의 청정한 세계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생멸하는 현상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법상종, 즉 유식학의 제팔식을 ‘종의 거울[宗鏡]’로 삼으며, 불생불멸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법성종의 여래장을 ‘종의 거울[宗鏡]’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ꡔ종경록ꡕ에서 말하는 ‘종의 거울’이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즉 현상계와 깨달음의 세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법상종의 제팔식과 법성종의 여래장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ꡔ종경록ꡕ권5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지금 ꡔ종경록ꡕ에서 논하는 것은 법상종처럼 유(有)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또한 파상종처럼 공(空)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종(性宗)인 원교(圓敎)에 의거하여 바른 이치를 밝히려는 것이니, 곧 진여(眞如)는 불변(不變)하지만 수연(隨緣)을 장애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원교의 뜻이다.4)


여기서 연수는 ꡔ종경록ꡕ에서 건립하려는 것은 법상종과 파상종의 이론이 아닌, 성종인 원교의 이론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종인 원교의 이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연수는 “진여는 불변하지만 수연을 장애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연수가 언급한 진여의 불변과 수연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법상종에서 제시하는 아뢰야식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 먼저 살펴봐야 한다. 즉 연수는 법상종의 아뢰야식이론이 가지는 어떤 이론적 한계를 지적하는 차원에서 그 대안으로 성종인 원교의 이론을 제출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법상종에서 말하는 제팔식인 아뢰야식은 허망한 식[妄識]으로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져 볼 수 있다. 현상세계의 소의인 아뢰야식이 오로지 허망하다면, 진실함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가?


중국에 있어 이와 같은 논의는 이미 남북조(南北朝)시대에서부터 이미 존재했었다. 즉 남북조시기 지론사(地論師)와 섭론사(攝論師)의 논쟁이 바로 그 한 예인데, 지론사는 ꡔ십지경론(十地經論)ꡕ을 중심으로 해서 성립하였고, 섭론사는 ꡔ섭대승론(攝大乘論)ꡕ을 중심으로 해서 성립하였다. 이들은 모두 아뢰야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지론사의 경우 아뢰야식을 곧 진상정식(眞常淨識)으로 보는 반면, 섭론사의 경우 아뢰야식을 염정식(染淨識) 즉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보았다. 둘 사이의 논쟁속에서, 섭론사는 지론사에 대해 진실하고 항상된 것[眞常]에서 어떻게 오염된 것이 나올 수 있는지를 반론하였고, 지론사는 섭론사에 대해 잡란(雜亂)의 것은 궁극적인 소의(所依)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섭론사는 제8식보다 더 궁극적인 제9식을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청정무구식(淸淨無垢識)인 아말라식(阿摩羅識)이다. 이들의 논쟁을 요약해보면, 첫째, 오로지 청정한 것에서 어떻게 오염된 것이 생길 수 있는가 라는 것과 둘째, 제법의 궁극적 소의는 청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5)


이들의 이러한 논의는 진제(眞諦)삼장의 ꡔ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ꡕ의 역출과 더불어 일단락된다. ꡔ대승기신론ꡕ에서는 일심(一心)에 두 가지 문(門)을 열어 일체법을 모두 포괄하고자 하니, 심진여문(心眞如門)은 청정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고 심생멸문(心生滅門)은 염오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두 문을 통해 일체의 청정과 염오의 것들을 원만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ꡔ대승기신론ꡕ의 사상은 위에서 인용한 “진여는 불변하지만 수연을 장애하지 않는다”라는 ꡔ종경록ꡕ의 구절로 압축될 수 있다.6) 즉 제법의 궁극적인 소의인 진여는 청정불변한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훈습되어 일체의 염오법을 낳는다는 것이 ꡔ대승기신론ꡕ의 기본적인 사유틀이며, 나아가 ꡔ종경록ꡕ에서 말하는 성종 원교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성종인 원교와 법상유식학은 어떤 관계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수는 진여가 지닌 불변과 수연의 측면 가운데 수연의 측면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법상유식학이라고 여기는데, 그 결과 법상종은 진여의 불변과 수연을 모두 아우르는 법성종의 한 측면으로 귀속된다. 다시 말해 ꡔ종경록ꡕ에서 인연대대의 현상을 설명할 때는 “진여의 수연”이라는 법상종의 거울을 사용하지만, 세계의 더 궁극적인 측면을 설명할 때는 “진여의 불변과 수연”이라는 법성종의 거울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Ⅲ. 구분유식(具分唯識)과 불구분유식(不具分唯識)


연수가 보는 유식학의 아뢰야식은 ‘불생불멸이 생멸과 화합하여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상태’7)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는 당대(唐代) 현장(玄奘: 600~604)에 의해 전입된 호법(護法)계열의 인도유식학에서 설명하는 아뢰야식과 어떤 관계를 지니는가? 연수는 유식학에 대해 자신의 독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ꡔ종경록ꡕ 권4에 나오는 다음의 문답에서 잘 드러난다.



문. 이 유식에는 대략 몇 종류가 있는가?


답. 대략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구분(具分)이요, 둘째는 불구분(不具分)이다. 우선 구분유식은 본성이 없다는 이치에 의해 ‘진여(眞如)의 수연(隨緣)’의 뜻을 이루니, 불생불멸이 생멸과 화합하여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을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것이 곧 구분이다. 만약 진심(眞心)에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사(事)가 이(理)에 의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오직 생멸(生滅)에 의거한 것으로 곧 구분이 아니다.8)


그는 유식학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구분(具分)이고 둘째는 불구분(不具分)이다. 우선 구분유식이란 진여(眞如)를 근본소의로 하고, 근본소의인 불생멸(不生滅)의 진여가 생멸(生滅)과 화합하여 둘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상태의 아뢰야식을 설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에 불생멸과 생멸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구분(具分)이다. 그리고 이는 ꡔ대승기신론ꡕ의 설명방식과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ꡔ대승기신론ꡕ의 사상은 여래장사상이라고 말해지는데, 연수에 의하면, 이 여래장사상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설이 바로 구분유식의 내용이다. 이에 반해 불구분유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법상유식학을 가리키며, 내용에 있어 생멸(生滅)의 아뢰야식을 일체법의 소의로 삼는 것으로, 아뢰야식에 생멸의 측면만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불구분(不具分)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영명연수에 앞서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상가의 영향을 고찰하는 것이고, 둘째는 교학적인 차원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는 것이다. 우선 연수 이전의 사상가 중에서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 규봉종밀을 들 수 있다.


지금 법성종과 법상종의 두 종이 서로를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진심’을 알지 못해서이니, 매번 ‘심’이라는 글자를 들으면 장차 말하기를 ‘단지 팔식이다’라고만 하되 ‘팔식이 단지 진심의 수연의 뜻’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명보살이 일심을 법(法)으로 삼고, 진여․생멸의 두 문을 의(義)로 삼았다.9)


이 대목은 종밀의 ꡔ선원제전집도서ꡕ의 내용인데, 연수가 ꡔ종경록ꡕ권81에서 이를 재인용하고 있다. ꡔ선원제전집도서ꡕ에서 이 단락은 본래 ‘법과 의의 다른 점을 설명하는 부분(法義不同善須辨識者)’으로, ꡔ대승기신론ꡕ에서 설하는 법․의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종밀은 법성종과 법상종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진심’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말하고 나서, 법상종의 ‘팔식’이 바로 ‘진심의 수연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법상종의 팔식이 진심에 근거하고 있다면, 법상종의 사상은 법성종의 사상과 자연스레 회통될 수 있게 된다. ‘진심’을 기초로 불교내의 선․교를 회통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종밀의 기본입장인데, 여기서 영명연수는 종밀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교학적인 차원에서 구분․불구분유식학의 근거를 찾아보자. 이는 연수가 당대(唐代) 현장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법상종의 가르침을 비판함과 동시에 세친의 유식학과 세친 이후의 주석가들에 의해 전해진 유식학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수는 세친이 지은 ꡔ유식삼십송ꡕ의 내용을 그것에 대한 10대논사의 주석서를 호법설을 위주로 합친 ꡔ성유식론ꡕ의 주석과 다르게 읽어냄으로써 자신이 주장하는 구분․불구분 유식학에 대한 근거를 마련한다.


ꡔ유식삼십송ꡕ의 게송에서 “또 제법의 승의는 또한 진여이니, 항상 그 본성대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유식의 진실한 본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천친(天親) 역시 여래장으로 식의 체를 성립시켰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단 뒤에 논을 해석하는 사람이 오직 불변만을 세웠으니 허물은 후인에게 돌아간다.10)


여기서 연수가 말하는 ꡔ유식삼십송ꡕ은 천친(天親) 곧 세친(世親)이 지은 것으로, 그가 인용한 것은 ꡔ유식삼십송ꡕ의 제25송에 해당한다. 세친은 ꡔ유식삼십송ꡕ을 지은 뒤 어떤 주석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친 자신의 주석은 없고 다만 그의 후대의 10대논사의 주석만이 있을 뿐이다. 후에 현장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다량의 경전을 수입해올 때, 10대논사의 주석을 모두 가지고 들어왔지만, 역출과정에서 규기(窺基: 632-682)의 건의에 따라 10대논사 중 호법의 주석을 위주로 하고 나머지 9명의 논사의 주석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번역한 책이 바로 ꡔ성유식론ꡕ이다.


다시 인용문으로 돌아가 보자. 연수와 법상종학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ꡔ유식삼십송ꡕ 제25송의 ‘진여가 곧 유식의 진실한 본성이다’라는 내용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ꡔ유식삼십송ꡕ의 제25송에 대한 ꡔ성유식론ꡕ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게송에서 말한]“제법의 승의는 또한 진여이다”에서 ‘진(眞)’은 진실이니 허망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여(如)’는 항상됨이니 변화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 진실은 일체의 지위에서 항상 그 본성대로이므로 진여(眞如)라고 한다. 이는 곧 고요하여 허망하지 않다는 뜻이다.11)


ꡔ성유식론ꡕ에서 설명하는 ‘진여’는 진실․허망하지 않음․항상됨․변화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이는 호법 이후 유식학에서 진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법상종의 진여는 무위법(無爲法)으로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고 항상된 것이다.


이에 반해 연수는 세친의 본래 입장은 ‘진여 곧 여래장이 곧 유식의 체’라는 것이지만, 이러한 입장은 후대의 주석가들에 의해 수용되지 않고 도리어 곡해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연수는 세친 후대의 주석가들이 진여에 대해 불변의 측면만을 논하고 수연의 측면을 간과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래장이 곧 식의 체’라는 연수의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연수는 대승의 경 즉 ꡔ능가경ꡕ, ꡔ대품반야경ꡕ 등의 내용을 근거로 삼아 “허망과 합하지 않았을 때는 여래장심을 참된 식으로 삼지만, (그것이) 드러나면 곧 제팔식이다(約不與妄合. 如來藏心. 以爲眞識. 現卽第八)”12)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즉 대승의 여러 경은 모두 청정한 상태의 여래장을 근본으로 삼으며, 그것이 무명의 훈습을 받아 만법을 생겨나게 할 때는 제팔식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연수는 대승의 여러 경의 논의에 근거하여 세친의 ꡔ유식삼십송ꡕ의 내용을 기존의 주석가들과 다르게 이해하는데, 이런 점은 규봉종밀의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통유식학의 입장에서 볼 때 ‘진여의 수연’이라는 측면을 수용하기는 어려우니, 왜냐하면 진여의 정의 자체에 항상되며 변화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구분유식을 원만히 설명하기 위해 정통유식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진여의 훈습 문제’를 해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Ⅳ. 진여(眞如)의 훈습(薰習)


앞에서 인용한 ꡔ성유식론ꡕ의 내용에 따르면, ‘진여’에는 진실․허망하지 않음․항상됨․변화하지 않음의 의미가 있다. 또한 진여는 ‘리계과(離繫果)’라고 하여, 불교의 인과이론인 육인(六因)․사연(四緣)․오과(五果)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리계과는 무상한 인연의 세계를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ꡔ성유식론ꡕ에는 다양한 외도․소승에 대한 논파부분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항상되고[常]․두루하며[遍]․단일하고[一]․만법을 낼 수 있는[能生萬法] 대자재천(大自在天) 등의 외도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항상된 것에서는 결코 만법이 생길 수 없다는 점에 놓여 있다.13) 즉 뭔가를 생기게 하는 것은 바로 변화한다는 말인데, 항상된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로부터 만법이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맥락에서 보면, 법상종의 학자들이 진여의 수연과 그로부터 만법이 생긴다는 견해를 수용하는 것은 자교상위(自敎相偉)에 해당하므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불교전반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불교의 인과론 자체가 일인론(一因論)과 무인론(無因論)을 잘못된 인과론[邪因論]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항상되고 불변하는 존재로부터 만법이 생긴다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불교에서 보자면 이는 ‘진여(혹은 여래장)연기론’의 문제로서, 구분유식이 유식의 원래입장임을 주장하는 연수로서는 반드시 해명해야 하는 문제이다.


ꡔ종경록ꡕ에는 ꡔ성유식론ꡕ의 유식사상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데, 여기서는 우선 훈습에 대한 ꡔ성유식론ꡕ의 논의를 먼저 살펴보자. ꡔ성유식론ꡕ에서는 훈습을 설명하는데 있어, 먼저 그것을 소훈(所薰: 훈습되는 대상)과 능훈(能薰: 훈습의 능력이 있는 주체)으로 나누어, 각각에 네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소훈의 네 가지 의미는 ①견주성(堅住性), ②무기성(無記性), ③가훈성(可薰性), ④여능훈공화합성(與能薰共和合性)이며, 능훈의 네 가지 의미는 ①유생멸(有生滅), ②유승용(有勝用), ③유증감(有增減), ④여소훈화합이전(與所薰和合而轉)이다.


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소훈에서 ①견주성(堅住性)은 훈습의 대상이 되려면 시종 일류(一類)로 상속하면서 습기(習氣)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전식(轉識)과 소리[聲] 등과 같이 견고히 머물지 않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②무기성(無記性)은 평등한 성질을 지녀야 한다는 것으로, 강력한 선․악의 세력을 배제하는 것이다. ③가훈성(可薰性)은 자재한 성질을 지니되 성질이 견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심소 및 무위법을 배제하는 것이다. ④여능훈공화합성(與能薰共和合性)은 소훈이라면 능훈과 동시적으로 같은 곳에 존재하되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ꡔ성유식론ꡕ에서는 이와 같은 4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소훈으로는 오직 이숙식(異熟識)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능훈에서 ①유생멸(有生滅)은 능훈이 되려면 항상된 것[常]이 아니며 작용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위(無爲)를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무위는 전후(前後)에 변화함이 없기 때문이다. ②유승용(有勝用)은 생멸의 세력이 강하여 습기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세력이 약한 이숙식 등을 배제한 것이다. ③유증감(有增減)은 수승한 작용을 지니고 증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불과(佛果)에 증감이 없는 것을 배제한 것이다. ④여소훈화합이전(與所薰和合而轉)은 능훈이라면 소훈과 동시적으로 같은 곳에 존재하되 그것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네 가지 의미를 갖추는 능훈은 오직 칠전식(七轉識)이라고 말한다.14)


ꡔ성유식론ꡕ의 이와 같은 논의에 따르면, 진여가 훈습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은 특히 소훈의 3번째 의미인 가훈성(可薰性)을 통해 배제된다. 즉 무위법인 진여는 그 성질이 견고한 것[堅密]이지 성긴 것[虛疏]이 아니므로 훈습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복 등과 같이 성긴 사물은 향 등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지만, 돌이나 쇠처럼 견고한 것들은 향 등의 기운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진여가 훈습의 주체가 된다는 주장 역시 능훈의 의미 가운데 생멸이 있는 것, 증감이 있는 것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배제된다. 연수 역시 정통유식학의 이런 논의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ꡔ종경록ꡕ 권4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훈의 세번째 조건에서] ‘성질이 견고하지 않아야 함’은 마명보살이 말한 진여가 훈습받을 수 있음을 배제한 것이다.15)


진여가 능훈과 소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당대법상종의 학자들이 모두 인정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대법상종의 학자들은 진여의 훈습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까? 당대 법상종의 학자인 지주(智周: 668~723)의 ꡔ성유식론연비(成唯識論演袐)ꡕ 권3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무명이 진여를 훈습한다는 것 등에 대한 설명. 옛부터 여러 대덕들 중에 이와 같이 계착하는 이가 많았지만, 이 논에서 [그것이] 배제되는 경우를 밝혔으니, 옛 대덕들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명보살 역시 ‘진여가 훈습을 받아 종자를 지닌다’고 말했지만, 아마 번역자의 오류가 아닌가 여겨진다.16)


지주에 의하면, ꡔ성유식론ꡕ이 번역되어 훈습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기 전까지는 여러 대덕들 가운데 진여의 훈습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지닌 이가 많았지만, ꡔ성유식론ꡕ에서 진여가 능훈이나 소훈에서 배제되는 이유를 충분히 해명하였기 때문에, 진여의 훈습문제에 대한 대덕들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명의 말이라고 전해지는 ‘진여가 훈습을 받아 종자를 지닌다’는 말 역시 번역자의 오역이 아닐까라고 하여 이러한 견해가 마명 본래의 의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수는 진여의 훈습에 대해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는가?


논주(論主: 즉 護法)가 이르기를 무위의 체는 견실하기가 마치 쇠와 돌 등과 같아서 훈습받을 수 없다. 대저 훈습될 수 있는 것은 우선 반드시 체성이 [堅密과 반대로] 허소(虛疏)해야지만 종자를 수용할 수 있다.


마명(馬鳴)이 구(救)하여 말하기를 “내가 말하는 ‘진여가 훈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진여는 본성이고 제팔식은 상이므로 본성과 상이 서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상을 훈습할 때 동시에 겸하여 본성도 훈습한다는 것이다. 혹은 상을 거두어 본성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진여가 훈습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여가 훈습받는다는 것에 무슨 과실이 있는가? 이는 마치 쇠와 돌로 가락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호법(護法)이 논파하기를 “상을 훈습할 수는 있지만 본성을 훈습할 수는 없으니, 마치 불이 세계를 태우지만 허공을 태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오직 제8식의 심왕만이 체성이 허소(虛疏)하여 비로소 훈습받을 수 있으니, 마치 의복이 허소(虛疏)하여야 비로소 향 등의 훈습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17)


여기서 연수는 진여의 훈습문제를 긍정하는 마명을 등장시켜, ꡔ성유식론ꡕ의 논주인 호법의 주장을 반박한다. 여기서 제팔식이 훈습되는 것이라는 점은 마명과 호법 모두가 인정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마명은 제팔식이 그것의 본성인 진여와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로 결합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상(相)인 제팔식이 훈습될 때 동시에 성(性)인 진여 역시 같이 훈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반지를 예로 들자면, 그것의 성(性)은 금(金)이고 반지는 상(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이라는 것은 무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性)을 지닌다. 그러므로 마명의 주장은 만약 금반지[相]에 어떤 자극이 가해질 경우 우리는 동시에 금[性]에 자극이 가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아뢰야식[相]이 훈습받을 때 동시에 진여[性] 역시 훈습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여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훈습되는가? ꡔ종경록ꡕ 권48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앞의 논의에 이어져 등장한다.



문. 앞의 ‘세 번째 소훈(所薰)에 대한 논의’에서 호법은 마명의 ‘진여가 훈습받는다’라는 뜻을 힐난하였다. 대저 훈습의 뜻은 상을 훈습하는 것이지 성을 훈습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는 마치 불이 세계를 태움에 허공을 태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진여가 훈습받는다는 뜻은 어떻게 회통할 수 있는가?


답. 대저 능훈․소훈은 두 종에 의거할 수 있다. 첫째는 법상종이고 둘째는 법성종이다. 앞의 호법은 법상종에 의해서 비난하였고 지금 마명은 법성종에 의거한다. 지금 법성종 또한 칠식 등이 능훈이 되고 팔식이 소훈이 된다. 그 팔식은 여래장이 수연으로 성립한 것이므로 생멸과 불생멸의 뜻을 포함한다. 지금 ‘훈’이라고 하는 것은 ‘훈습되지 않는 훈습’이며, ‘변화하지 않는 변화’이니, 곧 생멸문의 진여를 훈습하는 수연의 상이다. 만약 진여문이라면 곧 훈습하지 않는다. 이 훈습과 변화의 의미는 모두 불가사의하니, 오염되지 않으면서도 오염되기 때문이다.18)


연수 역시 진여의 훈습 문제가 정통 유식학의 관점(즉 호법의 관점)에서는 허용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불이 세계(즉 相)를 태우더라도 허공(즉 性)을 태울 수 없는 것처럼, 훈습은 상(相 즉 제팔식)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지 결코 성(性 즉 진여)에 대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호법의 반박을 인용하여, 이를 어떻게 진여의 훈습문제와 회통시킬 것인지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에 대해 연수는 우선 능훈과 소훈에 대해 두 종 즉 법상종과 법성종의 견해에 의거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한 뒤, 법성종에서의 능훈과 소훈 역시 법상종에서와 마찬가지로 칠전식(七轉識)과 팔식(八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법성종에서 설하는 팔식은 법상종과는 달리 ‘여래장이 수연으로 성립한 것’이므로 그 속에는 생멸과 불생멸의 두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진여의 훈습은 진여문과 생멸문 가운데서 생멸문에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즉 진여문의 차원에서는 훈습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9) 또한 생멸문에서의 진여의 훈습에 있어서도, 진여는 훈습될 수 없으면서도 불가사의하게 훈습되며, 또한 결코 변화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불가사의하게 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20)


이러한 논의방식은 앞서 지론사와 섭론사의 논쟁에서 결론적으로 도출되었던 두 가지 결론, 즉 ‘제법의 궁극적인 소의는 청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과 ‘청정함에서 어떻게 오염이 생기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하나의 절충된 답안을 줄 수 있으니, 진여의 불변의 측면을 통해 만법의 궁극적 소의가 청정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고 진여의 수연의 측면을 통해 청정한 법에서 오염된 법이 생기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진여의 수연을 설명하면서 내린 ‘불가사의한 훈습’이라는 결론은 어찌 보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진여에 있어 ‘훈습과 변화’란 본래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결국 그것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성립한다는 말은, 가령 진여의 훈습에 대해 매우 철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법상종의 입장에서 본다면 설득력 있는 대안 혹은 설명이 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논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연수는 진여의 훈습문제를 더 이상 철학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와는 다른 어떤 영역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즉 사고[思]와 논의[議]의 길이 끊어진 곳에서 이 문제가 다른 방식으로 파악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ꡔ종경록ꡕ 권41의 다음의 문답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문. 경(境)과 식(識)에 모두 자체(自體)가 없는데, 경이 식을 좇아 생긴다면 식은 무엇을 좇아 일어나는가?


답. 식은 진성(眞性)을 좇아 일어난다.


문. 진성은 무엇을 좇아 일어나는가?


답. 진성은 일어나는 바가 없다.


문. 일어나는 바가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현현하는가?


답. 일어남이 없음이 곧 일어남이요 일어남이 곧 일어남 없음이다. 일어남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음도 아니니 바로 불가사의한 일어남이다.


문. 무엇이 불가사의한 일어남인가?


답. 붉은 먼지가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고 흰 물결이 푸른 산에서 솟구친다.21)


이 문답의 내용 역시 결국 진성(眞性)이 어떻게 현현(顯現)하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외부의 경계[境]는 아뢰야식의 전변(轉變)을 통해 생기므로, 경계가 식을 좇아 생겨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뢰야식은 무엇을 근거로 생기는가? 이에 대해 문답에서는 진성(眞性)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다시 진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문답에서는 진성에는 일어나는 바가 없다고 대답하는데, 그렇다면 진성은 현상의 세계로 드러날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수는 이에 대해 진성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한 뒤, 그 영역이 바로 사고와 논의로서는 미치지 못하는 지점임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사고와 논의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연수는 단지 한 구절의 게송으로 답할 뿐이다. 이 문답을 통해 보면, 진여 혹은 진성이 불가사의하게 일어나는 문제(즉 훈습의 문제)는 연수에게 있어서는 철학적 논의의 영역을 넘어 선(禪)적인 체험 즉 종교적 체험의 영역에서 다시 긍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에서 설명한 내용은 영명연수가 처음 창안한 것이 아니며, ꡔ능가경ꡕ, ꡔ대승기신론ꡕ 등에서 이미 설한 방식이다. 이들 역시 진여의 훈습문제가 불교내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여의 훈습과 변화를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규정함으로써 불교에서 비판하는 외도의 일인론(一因論)과 차별화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전략은 흡사 부파불교시기 독자부(犢子部)에서 윤회의 주체인 보특가라(補特伽羅)를 불가설법장(不可說法藏)에 포함시킴으로써 불교의 삼법인 가운데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사상과 어긋나지 않게 하려 했던 시도와 흡사하다. 비록 독자부 자체에서는 보특가라이론이 불교의 무아이론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독자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파에서는 모두 독자부에 대해 ‘불법에 의지한 외도(依附佛法之外道)’라고 폄하했던 것처럼, 이와 유사하게 진여연기설 혹은 여래장연기설 역시 끊임없이 범화(梵化)불교라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는데, 연수의 회통논리의 중심인 진심(眞心)사상 역시 이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Ⅴ. 결론


이상으로 ꡔ종경록ꡕ에 등장하는 유식사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영명연수는 당대(唐代) 법상종에 의해 전입된 인도의 정통유식학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ꡔ종경록ꡕ내에서 많은 분량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지 법상종의 유식사상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넓은 지평에서 그것을 다른 종파의 사상과 회통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연수가 자신의 입장으로 삼고 있는 법성종의 원교(圓敎)의 가르침과 법상종의 가르침을 회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런데 법상종과 법성종을 회통하는 그의 방식은 법상종의 정통적인 학설[不具分]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보다 완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여래장계통의 유식학[具分]을 근거로 진행되었다.


구분유식에 대해서 연수는 보다 과감한 방식 즉, 일련의 대승경전을 통해 유식학의 근본입장을 다르게 파악한 뒤, 이를 근거로 법상종과 법성종을 회통하는 근거로 삼았고, 구분유식의 입장에 서서, 정통법상종의 입장에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인 진여의 훈습문제를 긍정적으로 논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 그의 결론은 그가 근거로 삼은 ꡔ능가경ꡕ이나 ꡔ대승기신론ꡕ 등의 방식에 따라 진여의 훈습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논의의 범위를 더 이상 철학적 논의의 지평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종교적 체험의 영역으로 확대한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연수의 회통논리의 핵심에는 ꡔ대승기신론ꡕ의 일심이문(一心二門)의 구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니, 곧 만법의 근본인 진여(眞如)는 불변(不變)의 측면과 수연(隨緣)의 측면을 가지지만 불변과 수연이 모두 결국은 진여로 귀속된다는 점에서,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 모두 일심으로 포섭되는 ꡔ대승기신론ꡕ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연수는 법상종을 ꡔ종경록ꡕ의 근본적인 거울인 ‘일심’ 혹은 ‘진심’의 한 부분, 즉 진여의 ‘수연의 측면’으로 파악함으로써 진심의 지평속에서 법상종을 회통할 수 있었다.





주제어


영명연수(永明延壽, Yong-ming Yan-shou), ꡔ종경록ꡕ(宗鏡錄, Zong-jing lu), 구분유식(具分唯識, perfect yogācāra thoughts), 불구분유식(不具分唯識, non-perfect yogācāra thoughts),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 법상종(法相宗, Fa-xiang zong), 법성종(法性宗, Fa-xing zong), 일심(一心, One Mind), 불변(不變, changeless), 수연(隨緣, participating in change)




1) ꡔ宗鏡錄ꡕ 卷10(ꡔ大正藏ꡕ 48, 473c20-26), “問. 今ꡔ宗鏡錄ꡕ, 以鏡爲義者. 是約法相宗立, 約法性宗立? 答. 若約因緣對待門. 以法相宗. 卽本識爲鏡. 如ꡔ楞伽經ꡕ云: ‘譬如明鏡, 現衆色像. 現識處現, 亦復如是’. 現識, 卽第八識. 以法性宗, 卽如來藏爲鏡. 如ꡔ起信論ꡕ云: ‘復次覺體相者. 有四種大義. 與虛空等. 猶如淨鏡’.”





2) ꡔ宗鏡錄ꡕ 卷5(ꡔ大正藏ꡕ 48, 440b13-15), “宗密禪師釋云: 大乘經敎, 統唯三宗. 一法相宗. 二破相宗. 三法性宗.”





3) ꡔ萬善同歸集ꡕ(ꡔ大正藏ꡕ 48, 959a15-18)에 따르면, 성종(性宗)의 특색은 본성을 곧장 가리키는데 있으며, 이는 선종(禪宗) 가운데서는 조계혜능(曹溪慧能)의 가르침에 해당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自古及今, 分宗甚衆. 撮其大約, 不出三宗. 一相宗, 二空宗, 三性宗. 若相宗多說是. 空宗多說非. 性宗惟論直指, 卽同曹溪見性成佛也.”





4) ꡔ宗鏡錄ꡕ 卷5(ꡔ大正藏ꡕ 48, 440a24-25), “今ꡔ宗鏡ꡕ所論, 非是法相立有. 亦非破相歸空. 但約性宗圓敎. 以明正理. 卽以眞如不變, 不礙隨緣. 是其圓義.”





5) 이상의 논의는 張風雷, 「智顗佛敎哲學述評」, ꡔ中國佛敎學術論典ꡕ 5(佛光山文敎基金會, 2001), 154쪽; 任繼愈 主編, ꡔ中國佛敎史ꡕ 第三卷(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7), 315-317쪽.





6) 당대(唐代) 화엄종의 법장이 쓴 ꡔ大乘起信論義記ꡕ에 의하면, 진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불변의 뜻이고 둘째는 수연의 뜻이다. ꡔ大乘起信論義記ꡕ(ꡔ大正藏ꡕ 44, 255c20-21), “眞如有二義. 一不變義, 二隨緣義.”





7) 이 구절은 ꡔ大乘起信論ꡕ에서 생멸문의 아뢰야식을 설명하는 부분과 똑같은 내용이다. ꡔ大乘起信論ꡕ(ꡔ大正藏ꡕ 32, 576b7-9), “心生滅者, 依如來藏故有生滅心. 所謂不生不滅與生滅和合非一非異, 名爲阿梨耶識.”





8) ꡔ宗鏡錄ꡕ 卷4(ꡔ大正藏ꡕ 48, 438c4-8), “問. 此唯識大約有幾種? 答. 略有二種. 一具分, 二不具分. 且具分唯識者, 以無性理故, 成眞如隨緣義. 則不生滅與生滅和合, 非一非異, 名阿賴耶識. 卽是具分. 若不全依眞心, 事不依理, 故唯約生滅, 便非具分.”





9) ꡔ宗鏡錄ꡕ 卷81(ꡔ大正藏ꡕ 48, 865c27-866a01); ꡔ禪源諸詮集都序ꡕ(ꡔ大正藏ꡕ 48, 401b28-c03), “今性相二宗, 互相非者, 良由不識眞心. 每聞心字, 將謂只是八識. 不知八識但是眞心上隨緣之義. 故馬鳴菩薩, 以一心爲法, 以眞如生滅二門爲義.”





10) ꡔ宗鏡錄ꡕ 卷5(ꡔ大正藏ꡕ 48, 441c25-28), “ꡔ唯識論ꡕ偈云: 又諸法勝義. 亦卽是眞如. 常如其性故. 卽唯識實性. 明知天親. 亦用如來藏而成識體. 但後釋論之人, 唯立不變, 則過歸後人.”





11) ꡔ成唯識論ꡕ 卷9(ꡔ大正藏ꡕ 31, 48a23-26), “此諸法勝義, 亦卽是眞如. 眞謂眞實, 顯非虛妄. 如謂如常, 表無變易. 謂此眞實, 於一切位, 常如其性, 故曰眞如. 卽是湛然不虛妄義.”





12) ꡔ宗鏡錄ꡕ 卷5(ꡔ大正藏ꡕ 48, 441c7-8). ‘여래장이 곧 팔식의 체’라는 것에 대해 ꡔ楞伽經ꡕ 등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은 ꡔ宗鏡錄ꡕ 卷5(ꡔ大正藏ꡕ 48, 441a14-442a2)에 자세히 나와 있다.





13) ꡔ成唯識論ꡕ 卷1(ꡔ大正藏ꡕ 31, 03b7-12), “有執有一大自在天, 體實遍常能生諸法. 彼執非理. 所以者何? 若法能生, 必非常故. 諸非常者, 必不遍故. 諸不遍者, 非眞實故. 體旣常遍, 具諸功能, 應一切處時, 頓生一切法. 待欲或緣, 方能生者, 違一因論. 或欲及緣, 亦應頓起. 因常有故.”





14) 이상의 논의는 ꡔ成唯識論ꡕ 卷2(ꡔ大正藏ꡕ 31, 09c5-29)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





15) ꡔ宗鏡錄ꡕ 卷48(ꡔ大正藏ꡕ 48, 699c8-9), “言性非堅密者, 卽簡馬鳴菩薩眞如受熏.”





16) ꡔ成唯識論演秘ꡕ 卷3(ꡔ大正藏ꡕ 43, 863b10-12), “疏. 無明熏眞如等者. 自古諸德多爲此計. 此論明簡, 故知古非. 馬鳴菩薩亦言眞如受熏持種, 恐譯者誤.”





17) ꡔ宗鏡錄ꡕ 卷48(ꡔ大正藏ꡕ 48, 699c9-17), “論主云, 無爲體堅密. 如金石等, 而不受熏. 夫可熏者, 且須體性虛疏, 能容種子方得. 馬鳴救云, 我言眞如受熏者, 以眞如是性, 第八是相. 性相不相離. 若熏著相時, 兼熏著性. 或攝相歸性故. 眞如受熏何失? 如將金石作指闣[鐶]等. 護法破云, 熏相不熏性. 如火燒世界, 不燒虛空. 今唯是第八心王, 體性虛疏, 方可受熏. 如衣服虛疏, 方能受香等熏.”





18) ꡔ宗鏡錄ꡕ 卷48(ꡔ大正藏ꡕ 48, 700c29-701a1), “問. 如前第三所熏中, 護法難馬鳴眞如受熏義. 夫熏習之義, 熏相不熏性. 如火燒世界, 不燒虛空. 此眞如受熏之義. 如何會通? 答. 夫能所之熏. 約有二宗. 一法相宗. 二法性宗. 前護法是依法相宗所難. 今馬鳴是依法性宗. 今法性宗, 亦七識等而爲能熏. 八爲所熏. 其第八中, 以如來藏隨緣成立. 含有生滅不生滅義故. 今言熏者, 是不熏之熏, 不變之變. 卽熏生滅門中眞如隨緣之相. 若眞如門中卽不熏. 此熏變義, 俱不可思議. 以不染而染故.”





19) 이에 대해서 원효(元曉)는 ꡔ大乘起信論疏ꡕ(ꡔ大正藏ꡕ 44, 208c17-27)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번역은 은정희, ꡔ대승기신론소․별기ꡕ(서울: 일지사, 1997), 134쪽 참조. “이 식(識)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일체법을 포괄하며 일체법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 …… 또 위의 두 문에서는 다만 포섭의 뜻만을 말하였으니, 왜냐하면 진여문(眞如門)에는 ‘생의(生義)’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식(識)에서 또한 ‘생의(生義)’를 말하였으니 생멸문(生滅門) 중에는 ‘생의(生義)’가 있기 때문이다. 이 뜻은 무엇인가? 불각의(不覺義)가 본각(本覺)을 훈습하기 때문에 모든 염법(染法)을 내며, 또 본각(本覺)이 불각(不覺)을 훈습하기 때문에 모든 정법(淨法)을 내는 것이니, 이 두 뜻에 의하여 일체법을 다 내기 때문에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일체법을 낸다’고 하였다(此識有二種義能攝一切法生一切法者. …… 又上二門但說攝義, 以眞如門無能生義故. 今於此識亦說生義, 生滅門中有能生義故. 此義云何? 由不覺義熏本覺故生諸染法. 又由本覺熏不覺故生諸淨法. 依此二義通生一切, 故言識有二義生一切法).”





20) 연수는 진여의 훈습에 대한 구체적인 양상 즉 ‘진여의 네 종류의 훈습의(薰習義)’ 등에 대해서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ꡔ大乘起信論ꡕ(ꡔ大正藏ꡕ 32, 586b25-c29)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설명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ꡔ宗鏡錄ꡕ 卷48(ꡔ大正藏ꡕ 48, 701a10-b24) 참조.





21) ꡔ宗鏡錄ꡕ 卷41(ꡔ大正藏ꡕ 48, 658c4-9), “問. 境識俱無自體者. 境從識生, 識從何起? 答. 識從眞性起. 問. 眞性從何而起? 答. 眞性則無所起. 問. 若無所起, 云何顯現? 答. 無起卽起, 起卽無起. 非起不起, 是不思議起. 問. 如何是不思議起? 答. 紅埃飛碧海, 白浪涌靑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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