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족첸 수행법에서 <명상>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종교정신과 道/불교 2016. 12. 19. 20:59



그렇다면 족첸 수행법에서 <명상>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정견에 한번 입문하자마자, 바로 그 안에서 흐트러짐 없이 편안히 쉬는 것이다.

뒤좀 린포체는 이렇게 말한다.

 

"명상이란 마음이 지어낸 모든 환영으로부터 벗어나 충분히 긴장을 풀고

 어떠한 미혹이나 집착도 없이 리그파의 상태에 주의를 쏟는 것이다.

 왜냐하면 '명상이란 억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이라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족첸 명상 수행의 핵심은 리그파를 강화시켜 확고하게 정위시키며 완전하게 성숙시키는 것이다.

 

투사를 일삼는 것이 습관화된 일상적인 마음은 매우 강력하다.

우리가 부주의하거나 마음이 흩어지면 그 마음은 끊임없이 되돌아와서, 쉽게 우리를 휘어잡는다.

 

뒤좀 린포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우리의 리그파는 강력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의 전쟁터에서 꼼짝 못하는 어린아이 같다." 

이제 우리는 리그파라는 어린아이를

명상이라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돌보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명상이 단지 정견에 입문한 후에 리그파의 흐름을 지속시키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리그파의 흐름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문제를 딜고 켄체 린포체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특유의 단순함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부동(不動)의 상태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리그파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으로 무언가를 꾀하거나 조작하지 않고

순수하고 원초적인 깨달음에서 부동의 상태로 쉬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리그파이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으로 무언가를 꾀하거나 조작하거나 무언가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리그파가 아니다.

 

리그파는 더 이상 아무 의심도 없는 상태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이다.

 

 

이제 당신은 직접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그 상태에 있다면, 완전하고 자연스러운 확신과 믿음이 리그파 그 자체와 함께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은 리그파를 깨달을 것이다. 

 


족첸 수행의 전통은 지극히 정확한 수행이다.

 

당신의 수행이 깊어질수록, 떠오르는 미혹도 더 복잡미묘해진다.

따라서 관건이 되는 것은 절대적인 실재에 대한 앎이다.

 

정견에 입문한 후일지라도 스승은 족첸 명상이 아닌 상태들을 세밀하게 가려주고,

당신이 그것을 혼동하지 않게 한다.

 

 

족첸 명상이 아닌 상태 중의 하나는 비인간적인 마음의 영토로 떠내려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어떠한 사유도 아무 기억도 없다.

그것은 어둡고 둔감하고 무관심한 상태로, 당신은 일상적인 마음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두번째 상태는 어느 정도 조용하고 약간 명료하긴 하지만 침체된 상태로,

여전히 일상적인 마음에 묻혀 있는 상태이다.

 

세번째는 생각의 부재로, 놀라서 멍청하게 붕 떠 있는 것이다.

 

네번째, 당신의 마음이 이리저리 흩어져 생각과 투사가 만들어낸 환영을 갈망하는 것이다.

 

네 가지 상태는 모두 진정한 명상 상태가 아니다.

수행자는 이러한 상태에 빠져들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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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첸 수행의 정수>는 이렇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과거의 생각은 이미 지나가고 미래의 생각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그 짧은 <틈>

   현재 순간의 의식이 있지 않겠는가? 

   신선하고, 숫처녀 같고, 한 터럭만큼의 개념도 찾아볼 수 없고, 빛나고, 있는 그대로의 의식. 
   그렇다, 바로 그것이 리그파이다! 

 

- 하지만 그 상태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른 생각이 갑자기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리그파의 찬란한 빛이다. 

-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러한 생각을 있는 그대로, 그것이 떠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인식할 수 없다면,

   그때 그것은 이전에 그러했듯이 또 하나의 일상적인 생각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혹의 사슬"이자 윤회의 뿌리이다. 

만약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것의 참된 본성을 인식할 수 있고,

   그 생각을 좇아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다면, 
   
어떤 생각이든지 자동적으로 리그파의 광대한 공간 속으로 되돌아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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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점은 이렇게 심오하면서도 단순한 네 가지 핵심에 내포된 풍요로움과 위대함을 이해해서 실현하려면,

일생 동안 계속해서 수행을 닦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나는 단지 족첸 수행의 맛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족첸 명상을 통해

결코 끊이지 않고 밤낮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리그파의 흐름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상태이다.

 

왜냐하면 정견에 한번 입문해 알아차린 이후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다년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행을 닦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족첸 수행은 마음에 일어나는 온갖 미혹을 다룰 때 특히 효과적이며 독특하다.

 

족첸 수행은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리그파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리그파에 적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 진정한 본성을 꿰뚫는 리그파의 "빛나는 광휘"이며

바로 그 에너지의 현현(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으로 간주한다. 

 

깊은 고요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 발견은 흔히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생각이나 움직임이 파도처럼 계속해서 떠오를 것이다.

그 움직임을 거역하거나 고요함만 끌어안으려 하지 말고, 순수한 현존의 흐름이 지속되게 하자.

 

당신의 명상이 충만하고 평온하게 유지되는 상태가 리그파 그 자체이고,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은 바로 리그파의 빛나는 광휘이다.

 

이것이 바로 족첸 수행의 핵심이자 토대이다.

 

 

족첸 명상은 햇빛을 타고 태양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마음에 떠오른 것들을 되돌려 당장에 그 뿌리까지, 리그파라는 근원까지 추적하게 된다.

 

정견이 굳건하게 자리잡으면, 무엇이 떠오르더라도 더 이상 속임수에 넘어가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되고,

미혹에 빠지지도 않게 된다. 


물론 바다에는 잔잔한 파도만이 아니라 거친 파도도 있다.

분노나 욕망이나 질투 같은 강렬한 감정이 떠오를 수도 있다.

 

진정한 수행자는 그러한 감정을 장애물로 여기기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애착이나 혐오 같은 습관적인 성향처럼 마음에 떠오르는 것에 당신이 반발한다는 것은 당신이 미혹에 빠져 있다는 신호임과 동시에, 당신이 리그파를 아직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또 리그파라는 근원을 상실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한 감정에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한층 북돋우는 짓이고 자신의 미혹의 쇠사슬에 더욱 단단히 옭아매는 짓이다.

 

족첸 수행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러한 감정이 떠오르자마자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현현하는 리그파 자체의 에너지를 볼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서서히 족첸 수행을 익혀갈수록 거친 파도가 일어나 으르렁거리다가 바다의 고요함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가장 난폭한 감정일지라도 당신을 사로잡지 못하고 저절로 소멸할 것이다. 

 


수행자는 격렬한 감정이 자신을 반드시 기진맥진하게 하거나 신경 쇠약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며,

리그파를 심화시키고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혁명적인 통찰이며, 그 불가사의함과 권능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광폭한 에너지는 리그파의 깨달은 힘으로 승화되기 위한 가공되지 않은 원료인 것이다.

감정이 강렬하고 이글이글 타오를수록, 리그파는 더욱더 강화된다.

 

족첸의 이처럼 독특한 수행법에는 가장 만성적이고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감정적, 심리적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힘이 함축되어 있음을 나는 느낀다. 


이제 나는 되도록 간략하게 이러한 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훗날 죽음에 직면할 때, 내가 지금 제시하는 것은 무한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족첸 수행에서는 모든 것의 가장 근본이 되는 타고난 본성을 "근원적 광명" 또는 "어머니 광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경험에 스며들어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의 타고난 본성이다.

 

스승이 우리를 마음의 참된 본성, 즉 리그파에 입문시킬 때,

그것은 마치 마스터 열쇠를 건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족첸 수행에서는 전체적인 앎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는 이 열쇠를

"통로 광명" 또는 "어린아이 광명"이라고 부른다.

 

물론 근원적 광명과 통로 광명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둘로 나눈 것은 오직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구별한 것일 뿐이다.

 

 

스승의 인도로 일단 통로 광명의 열쇠를 얻게 되면,

우리는 실재의 본래적인 본성에 이르는 문을 열기 위해 그 열쇠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족첸 수행에서는 이렇게 문을 여는 것을 "근원적 광명과 통로 광명의 만남" 또는 "어머니 광명과 어린아이 광명의 만남"이라고 부른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이나 감정이 마음속에 떠오르자마자 통로 광명(리그파)은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것의 타고난 성품인 근원적 광명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지하는 순간 두 개의 광명은 서로 융합되며, 생각과 감정은 그 근본에서부터 자유로워진다. 

두 개의 광명을 융합시켜 삶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이 수행을 완벽하게 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죽음의 순간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근원적 광명이 엄청난 광휘와 함께 떠오르고 완전한 해탈의 기회가 제공된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제는 두 개의 광명을 융합하여

생각과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장 깊은 차원의 명상임이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사실 "명상"이란 용어는 족첸 수행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족첸 수행에서는 오직 그리고 영원히 리그파만 존재하는 반면,

명상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서" 명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그파의 순수한 현존을 유지시키는 것과 명상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아마도 "비(非)명상"일 것이다.

 

스승들은 이 상태에서 "만일 당신이 미혹을 찾는다 할지라도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금은보화로 이루어진 섬이라면 평범한 조약돌을 아무리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정견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리그파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두 개의 광명이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서로 융합하게 될 때, 온갖 미혹은 그 뿌리에서부터 소진될 것이고, 우리의 지각 전체가 한순간의 끊어짐도 없이 리그파 그 자체로 나타날 것이다. 

 


명상 수행을 통해 정견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춘 특별한 환경의 은둔지에서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스승들은 강조한다. 번잡한 세속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명상할지라도, 마음으로 제대로 체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둘째, 족첸 수행에서는 명상과 일상 생활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적절한 과정을 거쳐 수행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얻지 못한다면 명상의 지혜를 일상 생활의 경험과 통합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심지어 수행하고 있을 때조차도, 정견에 대한 확신과 리그파의 지속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명상 수행과 일상 생활을 결합시키면서 언제든지 또 어떤 상황에서든지 리그파의 흐름을 유지할 수 없다면, 불리한 상황에 마주칠 때 치유법으로 활용할 수 없고,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내는 미혹에 사로잡혀 망상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가식 없이 살았으며 많은 제자가 따랐던 한 족첸 수행자의 애교 넘치는 일화가 있다.

 

자신의 지식과 학문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한 사문이 그 수행자가 읽은 것이 별로 없음을 알고 그를 시샘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평범한 녀석이 어찌 감히 남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감히 스승을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를 만나서 그의 지식을 시험해 봐야지. 그가 야바위꾼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제자들 앞에서

놀려줘야겠다. 그러면 제자들은 그를 떠나 나를 따르게 되겠지." 

어느 날 그는 족첸 수행자를 찾아가 경멸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이 족첸 패거리들아, 하는 짓이 고작 명상밖에 없느냐?" 

수행자의 대답은 그를 완전히 놀라게 했다.

"명상해야 할 것이 도대체 있기나 한가?" 

그 사문은 의기양양하게 고함쳤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명상조차 하지 않는단 말인가?"

 

수행자는 대답했다.

"내가 언제 마음이 흩어진 적이 있단 말인가?"

 

 

 

 

 

티베트의 지혜 69. 명상 - 족첸 수행법의 핵심/정수 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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