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의 해답, 증산도

증산도는 무엇인가 2011. 11. 15. 11:55

현대문명의 해답, 증산도

인류문화의 모든 진액을 거두어…

역사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 인간은 부단히 꿈을 간직하며 살았다. 단지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자 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 땅 에 넘쳐나는 모든 모순과 불행이 끝을 맺고 정말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완성의 꿈이다.

본 글은 바로 이 꿈에 대한 이야기다. 꿈을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할 것인가?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룰 것인가?

21세기의 중반으로 들어선 이 시대는 인터넷 혁명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류 문화의 새로운 지평선으로 올라섰다. 우리는 이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새로운 인류 문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재해와 더불어 경제 위기, 또한 가끔씩 난데 없이 나타난 새로운 질병들이 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문명의 결론에 대해 가슴 깊은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글에는 증산도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현시대에 인류가 겪고 있는 불행은 인간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스스로 줄을 엮어 목매달아 자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이 처절하고 피에 얼룩진 역사는 곧 인간 자신의 역사였기에 책임 또한 인간에게 있을 뿐.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다.

인간사회에 모순이 넘쳐나고 있다면 그 또한 우주의 법칙일 뿐이다.

지금은 우주의 환절기이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이다.

그래서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우주의 주재자이신 증산상제님께서는 절멸의 지경에서 신음하는 인류와 우주를 살리기 위해 “개벽”이라는 대수술을 감행하셨다. 그것은 단순한 개혁이 아니다. 전 우주적인 차원의 대변혁이다. 병든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치는 거대한 공사이다. 이 글이 여러분의 인생에 크나큰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문명의 황혼녘에 선 인류

서쪽 하늘 언저리, 불타는 저녁노을을 받아 피빛으로 빛나는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긴 그림자를 끌고 우두커니 강둑에 서서 먼 산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어떤 사람의 모습.

땡볕 속에서 유난히 분주했던 하루. 대낮의 소란스런 기억이 이젠 가물가물 해 그림자와 함께 멀어져 간다. 그의 어깨 위엔 바랜 태양빛만이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요란스러웠지만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던 하루. 이젠 다가오는 새날을 꿈꾸며 자기 내면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사나이.

그의 이름은 인류.

짙은 안개 속에서 우리 앞에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는 미래. 저마다 손을 눈썹에 대고 열심히 그 모습을 바라보지만 어느 누구도 미래의 얼굴을 확실히 본 사람은 없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

문명의 황혼녘에 서있는 인류.

지금 우리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

현대문명의 상징은 대도시의 밤거리이다. 옛날 같으면 하늘거리는 초롱불 밑에서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다가 잠들던 시간, 이제는 전등빛이 거리를 대낮같이 밝히는 시대이다.

LED전광판의 율동이 밤거리를 장식하고 빌딩 숲 사이사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물결, 도로마다 질주하는 자동차의 물결.

문명은 밝고 희망에 찬 것이다. 백화점의 휘황찬란한 쇼윈도우에는 온갖 문명의 산물이 진열된다. 하지만 그 상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상품 에 밀려 구석으로 들어간다. 인간생활의 편리를 위해 날마다 산더미 같이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 사람들은 백화점에 갈 때마다 자신의 미래가 희망으로 가득 찬 것임을 느끼며 가슴 뿌듯해 한다. 분명 물질문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인간의 삶은 문명이 만들어놓은 희망의 부적으로 장식될 것처럼 보인다.

물질문명은 무한히 발전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진정 지상낙원을 선사할 수 있을까?

무조건 앞만 보고 뛰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다. 화려한 물질문명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똑같이 절망을 키워 주었다. 이 절망을 넘지 못하면 우리는 파멸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거대하고 험준한 산맥, 그것이 무엇일까?

 

제살 깍아먹는 발전

약 400년 전, 우리 인류는 갑자기 위대해지기 시작했다.

신의 그늘 아래에서, 내세의 복락을 꿈꾸며 고통스런 이승의 삶을 감내하며 살던 인류, 그때 홀연히 등장한 새로운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기계로 보는 사람들이었다.

'이기주의는 미덕이다.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힘쓰면 사회 또한 진보하게 된다. 무한히 경쟁하여 서로 발전하자. 자연 또한 무한한 것이니 거침없이 파헤치고 써버리자. 자연은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있는 것 이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그때부터이다. 인류의 문명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장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여러 가지 기계들이 발명되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땅을 파헤쳐 자원을 캐냈다. 드디어 인공위성을 쏘고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발전의 이면에 깃든 다른 사실들은 고의적으로 무시되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를 토해 냈다. 하수구 에서는 악취 나는 폐수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인간이 마실 물까지 오염되었다. 자원은 무한정할 줄 알았는데 계속 캐내다 보니 이젠 몇 십년도 채 쓸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기적의 기체라고 불렸던 프레온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해 사람들을 피부암의 공포에 떨게 하고 있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무서운 기상이변의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의 울창한 삼림지대도 매년 한반도 면적만큼씩 줄어들면서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 언제 우리의 숨통을 죄어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뿐인가? 우리의 삶은 어떤가?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의 가치는 물질로 인식되어 왔다. 공룡처럼 비대해진 산업문명은 이제 인간을 위한 문명이 아니라 문명을 위한 문명으로 변했다. 인간은 문명의 부속물이 되었다.

지금 세상에서 인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평생 동안 삶을 위한 시간이 없다.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노동의 목적은 더 나은 상품 을 구입하기 위한 것이다. 좋은 집과 맛있는 음식, 멋있는 옷, 성능 좋은 자동차. 결국 삶의 목적은 상품 구입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버렸다.

범죄와 마약, 윤리적 가치관의 파괴, 인간소외 현상, 인류사회가 당면 하고 있는 이 모든 문제는 결국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무한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일으켜진 자본주의의 전차는 선로 없는 길을 이제 가려고 한다. 언제 전복될지 모르는 길을 뒤뚱거리면서 지나가고 있다. 더 이상 팔고 사는 것으로 인간의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삶 자체보다 상품 가치가 더 중요한 시대. 인류는 불을 좇는 불나비처럼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을 상품화하지 말라.

더 이상 인간을 상품화하지 말라.

이렇게 이제 조용히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감성의 깊은 곳에서 점점 크게 고동치는 목소리가 있다.


잘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

표정없는 얼굴,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기나긴 행렬, 굶주림에 지친 희멀건 눈빛으로 어린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는 어머니들, 슬퍼할 여유도 통곡할 힘도 없다. 막대기같이 길쭉한 깡마른 시신들은 하얀 포대자루에 담겨 어딘가에 묻힌다.

수년 전부터 우리는 TV을 통해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에 닥친 극심한 기아의 현상을 보게 되었다. 어디 이곳 뿐이겠는가? 2008년 벽두에 지진으로 대통령궁도 무너진 아이티는 아직 제대로 복구도 못하고 있으며, 콜레라의 공포에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구촌 어떤 곳에선 풍요와 온갖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굶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가고 있다.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이 있고, 그들의 눈치를 봐가며 연명해야 하는 약소국이 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이런 큰 격차가 있다는 사실은 지구촌의 안녕을 크게 해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온갖 이익과 국내사정이 얽혀 큰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유럽 일부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극우주의는 결국 이런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잇달아 터져나오는 분쟁의 포성

제국주의 시대. 그것은 엄청난 힘의 폭력이었다. 산업혁명을 일찌감치 치른 대가로 큰 힘을 길렀던 서구의 열강들은 열광적으로 약소국들을 정복헤 나갔다. 그 나라의 인력과 자원을 있는 대로 수탈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부유한 나라 축에 들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빈곤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자기들 마음대로 국경선을 그어 나갔다. 많은 세월을 통 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경선을 무시하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자를 대고 경계선을 그려 국가를 만들었다.

그 이후,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지나고 그 결과 새롭게 등장한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이데올로기 대결을 벌였던 냉전시대에는 힘의 균형이 유지되었다. 이제 냉전도 끝나고 평화가 오는가 싶더니,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은 많은 전쟁 수행 끝에 경제적으로 파탄의 경계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대로 들어가고 있다. 왜 그런지 주요 강대국들이 모두 빚으로 경제가 파탄날 지경이다.

다시 세계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외계인이 침공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가?

 

위기와 대면하고 있는 인류

이런 모든 모순과 대립, 인류의 허물로 인해 지구 전체가 중병을 앓고 있다.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류 또한 모두가 병이 들었다. 이리저리 으깨진 시대의 상처에서 검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던 장미빛 미래가 검은 연기로 뒤덮이고 있다.

침입자! 희망의 파괴자! 한 시대가 저물어 영롱하고 화려한 내일의 단 꿈을 꾸던 인류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위기!

누구나 세찬 고갯짓으로 거부하고 싶어하는 말.

위기의 시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이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있겠는가? 이 시대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긍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느새 빠른 걸음으로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와 서있다. 요즘 들어 우리와 부쩍 친숙해진 이 말.

어느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 시대의 중병을 치유할 것인가? 절망의 벽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인가?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낱낱이 가려내야 한다. 중병을 앓고 있는 병자에게 그저 진통제 몇알만 주는 의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대수술. 낱낱이 환부를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 나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지구와 인류를 살리는 길, 인류는 그 길을 하루 바삐 찾아야 한다.



문명의 새 출발을 위하여

어떤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학술서적보다 미래의 모습을 더 분명하고 나름대로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공상과학영화'라 고.

우리는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공상과학영화를 본다. 그런 영화를 좋아 하는 사람들은 일단 현란한 영화기법에 일차적으로 매료됐음직하지만 그 보다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궁금증 탓일 것이다.

그 영화들은 대개가 두가지 주제로 나눠진다. 핵전쟁 혹은 환경파괴로 인해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는 것. 아니면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로보트가 힘든 일을 대신해주고 인간은 그저 우주여행이나 하면서 편 하게 살아가는 지상낙원의 모습.

하지만 이들 두 부류의 영화주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한계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삶의 문제, 가치의 문제를 지금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이 변하면 인간의 생각도 달라지는 법인데도 그렇다. 아마 과학문명의 미래는 짚을 수 있어도 삶의 문제에 대한 대안은 전혀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사실 이는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화려한 물질문명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에 따르는 올바른 시대정신을 정립 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 어른의 덩치에 어린 아이 같은 정신.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고도 정신은 여전히 과거의 사금파리 조각이나 더듬고 있는 현대인들.

공상과학영화가 그려낸 것처럼 희망에 찬 인류의 내일은 첨단 과학기술문명이 이룩해내는 것이다. 문명은 이미 가까이 와있다. 지금과 같은 발전속도로 볼 때, 초과학문명시대의 도래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하 지만 그릇된 문화, 그릇된 시대정신이 인류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이념으로 어떻게 내일을 맞을 것인가?

앞에서 보았듯 우리 눈앞에 닥친 수많은 문제들이 인류를 파멸직전까지 몰고가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초과학문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때쯤이면 이미 인류는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단순한 개혁, 단순한 이념을 가지고 덤벼드는 것은 중병에 걸려 신음 하는 환자에게 진통제 몇알 주고 마는 것과 같다. 이제는 초과학문명에 걸맞는 초첨단문화와 이념이 나와야 한다.

현대의 우리 인류에겐 이런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보다 차원 높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때이다. 오랜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흙먼지 가득한 대지 위에 내리는 단비같은 해결책! 새 진리에 목이 타고 있는 인류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새 시대 새 이념!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다소 생소하더라도 귀담아 들어보자. 이는 한국에서 탄생한 인류의 대도, 증산도의 이야기이다. 

(수정 중)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문화의 모든 진액을 거두어 모아 새로운 문명세계를 열어나가는 우주의 위대한 대도(大道)이다.

투쟁과 상극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야 했던 불행한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강증산 상제님은 약 140년 전, 이 땅 동방의 한반도에 강림하셨다. 증산도의 진리는 선천의 모든 종교, 과학, 철학 등에서 이야기하는 스토리와는 그 틀을 달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배운 세상의 어떤 지식의 잣대로 잣대질한다고 하여 폭을 잡을 수 없는 진리이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그 누구도 새로 듣지 않을 수 없다.

 
 
2011/10/20 - [증산도는 무엇인가?] -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
2011/11/19 - [우주변화의 원리] - 깨달음의 정수는 우주론(宇宙論)
2011/12/23 - [증산도 대도문답] - 개벽과 종말의 차이
2011/12/23 - [세상의 변화] - 도깨비가 사라진 이유
2011/12/20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0]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1]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2]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3]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4]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5]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6]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7]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8]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9]
2011/12/29 - [우주변화의 원리] - 잃어버린 원을 찾아서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