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의 대종사(大宗師)

종교정신과 道/선천종교의 모습들 2017. 8. 7. 15:14

 

莊子의 대종사(大宗師)

 

 

-장자(莊子) 

 

知天之所爲: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知人之所爲者至矣:       사람이 하는 일을 알면 최고 경지다.

知天之所爲者: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자는

天而生也:               하늘이 하는 일이 삶이고

知人之所爲者: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자는

以其知之所知:           그 아는 지식을 기반으로

以養其知之所不知:       알지 못하는 바를 그 지식으로 보충해 나간다.

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   그 지식이 천년이가도록 도중에 헛되지 않는 것이

是知之盛也:             바로 지식다운 지식인 것이다

雖然有患:               그러나 아직 미진함이 있는 것이

夫知有所待而後當:       대체 지식이란 언제나 보편타탕한 것이어야 하는데

其所待者特未定也:       그 타당성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庸詎知吾:               아니 내가 어찌 알겠냐마는 !

所謂天之非人乎;         하늘이 사람 아닌지 !

所謂人之非天乎:         사람이 하늘 아닌지 !

且有眞人而後有眞知:     그러니 제대로 아는 이가 있어야 비로소 참된 지식이 있는 것이다.

何謂眞人                누구를 진인이라 하는가?

古之眞人:               옛날의 진인은

不逆寡:                 작은 것 하나도 거슬리지 않고

不雄成:                 크게 이루려 하지 않았으며

且有不謨士若然者:       이렇게 꼼수 쓰지 않는 사람은

過而弗悔:               비록 잘못을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고

當而不自得也: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 건 당연 일이다.

若然者: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登高不慄:                높은 곳을 올라가도 떨지 않고

入水不濡: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入火不熱:                불에 들어가도 열 받지 않는다.

是知之                   이쯤 알고 있다면

能登假於道者也:          능히 도통했다 하겠다.

若此古之眞人:            이와 같이 옛날의 진인은

其寢不夢:                잠을 자도 꿈꾸지 않고

其覺無憂:                깨어 있어도 근심 없고

其食不甘:                음식 탓 하지 않고

其息深深:                숨을 쉬는 것이 깊고 고요했다.

眞人之息以踵:            진인은 발꿈치로 쉬고 (앉아서 명상을 하고)

衆人之息以喉:            범인은 목구멍(먹는 즐거움으로) 쉰다.

屈服者:                  치사한 인간의

其嗌言若哇:              아첨하는 소리는 마치 무엇을 토하는 것 같고

其耆欲深者:              늙어서까지 욕심이 스믈 거리는 자

其天機淺:                그 천기가 미천하다.

古之眞人:                옛날의 진인은

不知說生:                삶의 즐거움도

不知惡死:                죽음의 슬픔도 알지 못했다.

其出不訢: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고

其入不距: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翛然而往:                훌쩍 가고

翛然而來而已矣:          훌쩍 올 뿐이다.

不忘其所始:              그 시작하는 곳 모르고

不求其所終:              그 끝을 알려 하지 않는다.

受而喜之:                받으면 기쁘고

忘而復之:                잃으면 되받으니

是之謂不以心損道:        이를 일러 진정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다.

不以人助天:              사람이 하늘 일을 거들지 않으니

是之謂眞人: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若然者:                  그런 사람은

其心忘:                  모두 내려놓고

其容寂:                  고요한 자태에

其顙頯:                  널찍한 이마가

凄然似秋:                가을 같이 시원하고

煖然似春:                아늑하기 봄과 같다.

喜怒通四時: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이 계절의 변화와 같은데

與物有宜而莫知其極:     사물과 같이 취급하니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다.

故聖人之用兵也:         그러므로 성인이 군대를 동원하여

亡國而不失人心:         나라가 망해도 인심을 잃지 않고

利澤施乎萬世:           은혜가 만세에 미친다.

不爲愛人: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故樂通物:               사물을 뜻대로 하기를 즐기는 자는

非聖人也:               성인이 아니다.

有親非仁也:             친하게 지내는 것이 자애로운 것만은 아니다.

天時非賢也:             하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것이요.

利害不通:               이해에 통하지 않는 자는

非君子也:               군자가 아니다.

行名失己:               명예를 쫒다가 자기를 잃는 자는

非士也:                 선비가 아니다.

亡身不眞:               참됨이 없으면 신망을 앓고

非役人也:               남을 부리지 못한다.

若狐不偕務光伯夷叔齊箕子胥餘.紀他.申徒狄: 호불해.무광.백이.숙제.기자.서여.기타.신도적이

是役人之役:             남의 일에 쓰임을 받은 것은

適人之適:               남이 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하고

而不自適其適者也: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 못하는 자이다.

古之眞人:               옛날의 진인은

其狀義而不崩:           그 기상이 우뚝 높이 솟아 무너지지 않고

若不足而不承:           부족하여 처음 그대로 이어가지 못하더라도

與乎其觚而不堅也:       누구와도 정의롭지 않다면 함께 도모하지 않았다.

張乎其虛而不華也:       멋진 무대라 해도 팬이 별로면 노래하지 않고

邴邴乎其似喜也:         아무리 기쁘더라도 살짝 웃고

崔乎其不得已也:         흥청망청 너부러져 있어도 그냥 주워오지 않고

滀乎進我色也:           마음이 답답해도 미소 지며 나아가고

與乎止我德也:           누구와도 내가 손해 보는 것으로 끌을 내고

厲乎其似世也: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이 세상사와 같으니

謷乎其未可制也:         헐뜯어도 못 본채하고

連乎其似好閉也: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문 닫고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忟乎忘其言也:           잘 모르겠으면 입 딱 다물고

以刑爲體(이형위체) :     형벌을 근본으로 삼고

以禮爲翼(이예위익) :     예의를 법도로 삼고

以知爲時(이지위시) :     아는 것을 기회로 삼고

以德爲循(이덕위순) :     덕성을 순리라 여긴 것이다.

以刑爲體者:             형벌을 근본으로 삼음은

綽乎其殺也:             너그러움이 곧 그 죄를 죽이는 것과 같고

以禮爲翼者:             예의를 날개로 삼는다 함은

所以行於世也:           세상에 널리 禮가 펼쳐져야하는 까닭이며

以知爲時者:             아는 것을 기회로 삼는다 함은

不得已於事也:           어쩔 수 없이 일을 할 때를 위해서이다.

以德爲循者:             덕성을 순리라 여기는 것은

言其與有足者至於丘也:   두 발이 있어야 언덕을 오른다는 말이다. (혼자는 못사는 것이니 이웃에 덕을 베푸는 것을 순리라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소도 어덕이 있어야 비빈다.–

而人眞以爲勤行者也:     이것을 진인은 꼭 지켜야 할 규범으로 삼은 것이다.

故其好之也:             그러므로  그것이 좋다고 한 것이다.

其弗好之也一:           그것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其一也其不一也:         그 하나는 하나가 아니요.

其一與天爲徒:           그 하나는 하늘에 주어 따르게 하고.

其不一與人爲徒:         그 아니라는 하나는 사람에 주어 따르게 한 것이니

天與人不相勝也:         하늘과 사람은 서로 다투지 못한다.

是之謂眞人: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고 한다.

死生命也:               죽음과 삶은 운명이요

其有夜旦之常天也 :      命은 밤과 아침의 일정한 하늘에 있는 것이다.

人之有所不得與皆物之情也: 인간은 모든 만물과 같이 어쩔 수 없는 바가 情이다.

彼特以天爲父:           이는 다만 하늘을 아버지로 여기고

而身猶愛之:             몸소 유달리 사랑하는데

而況其卓乎:             하물며 그보다 훌륭한 것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人特以有君爲愈乎己:     사람들은 군주를 자기보다 났다고 여기어

而身猶死之 :            몸소 목숨을 던지는데

而況其眞乎:             하물며 그보다 진실한 것을 위해 어찌 목숨을 던지지 않겠는가?

泉涸:                   샘물이 말라

魚相與處於陸:           물고기가 땅위에 모여

相呴以濕:               서로 거품을 뿜어 물을 끼얹고

相濡以沫:               서로를 적셔 주는 것은

不如相忘於江湖: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만 못하다.

與其譽堯而非桀也:       모두들 요임금을 칭찬하고 걸왕을 헐뜯기보다는

不如兩忘而化其道:       양 쪽을 다 잊고 도를 논하느니만 못하다.

夫大塊載我以形:         자연은 우리에게 모습을 주었다.

勞我以生                삶으로써 나를 힘들게 하고

佚我以老:               늙음으로써 편하게 하며

息我以死:               죽음으로써 쉬게 한다.

故善吾生者:             그러므로 내 삶을 좋다고 하는 것은

乃所以善吾死也:         곧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夫藏舟於壑 :            무릇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藏山於澤:               그물을 못에 감추고서

謂之固矣:               그것으로 단단하다고 한다.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그렇지만 한밤중에 장사가 그것을 메고 달아나면

昧者不知也 :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

藏小大有宜:             작은 것을 큰 것에 잘 감추었다 해도

猶有所遯:               오히려 가지고 달아난다.

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 만약 온 세상을 온 세상에 감추면 훔쳐 갈 곳이 없다.

是恒物之大情也:          이것이 바로 만물의 커다란 情이다.

特犯人之形而猶喜之:      그저 사람의 형체를 얻은 것을 기뻐하지만

若人之形者:              사람의 형체란

萬化而未始有極也:        만 가지 변화에서 시작도 못하고 끝난 꼴인 것이다.

其爲樂可勝計邪:          그 것이 즐겁다하면 답이 나오겠는가?

故聖人將遊於物之所不得遯而皆存: 따라서 성인은 모든 시물의 존재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노닐고자 한다.

善夭善老:                일찍 죽어도 좋고 늙어도 좋으며

善始善終:                태어나도 좋고 죽는 것도 좋다.

人猶效之:                사람들은 가히 본받으려 하는데

又況萬物之所係:          더더욱 만물이 매여 있는 곳에

而一化之所待乎:          한가지의 변화가 대수롭겠는가.

夫道:                    데체 도란

有情有信:                나타나는 작용이 있고 믿을만한 것이 있으나

無爲無形:                행동도 없고 형체도 없어

可傳而不可受:            전할 수는 있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

可得而不可見: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自本自根:                스스로 근본이 있고

未有天地:                천지가 아직 생기기 전의

自古以固存:              옛날부터 본래 존재하며

神鬼神帝生天生地:        귀신상제하늘과 땅을 낳고

在太極之上而不爲高:      가장 높은 곳 더 위에 太極위에 있으면서 높은 척하지 않고

在六極之下而不爲深       가장 깊은 곳보다 밑에 있으면서 깊은 척하지 않는다.

先天地生而不爲久: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으면서도 오래됐다 하지 않고

長於上古而不爲老:        까마득한 옛날보다 더 오래면서도 늙었다고 하지 않는다.

狶韋氏得之以挈天地:      희위씨는 도를 터득하여 천지를 들고 다니고

伏羲氏得之以襲氣母:      복희씨는 도를 터득하여 생성의 기운 속에 들어갔다.

維斗得之終古不忒:        북두성은 도를 터득하여 영원히 변함없고

日月得之終古不息:        해와 달은 도를 터득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고

堪坏得之以襲崑崙:        감배는 도를 터득하여 곤륜산에 들어가고

馮夷得之以遊大川:        풍이는 도를 터 황하에 노닐며

肩吾得之以處大山:        견오는 도를 터득하여 태산에 살고

皇帝得之妊雲天:        황제는 도를 터득하여 하늘에 오르며

전頊得之以處玄宮:        전욱은 도를 터득하여 현궁에 살고

禺强得之立乎北極:        우강은 도를 터득하여 북극에 서 있다.

西王母得之坐乎少廣:      서왕모는 도를 터득하여 소광산에 앉았고

莫知其始莫知其終:        태어난 때도 모르고 죽은 때도 알지 못한다

彭祖得之上及有虞:        팽조는 도를 터득하여 위로는 유우 때부터

下及五伯:                밑으로는 오패 때까지 살았고

傅說得之以相武丁:        부열은 도를 터득하여 무정을 도와

奄有天下乘東維:          천하를 차지하고  동유를 타고

騎箕尾而比於列星:        기미(궁수. 전갈별자리)에 올라 많은 성신과 나란히 별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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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석의 大예언 - 2010년을 넘으면 임신하기 어려울것

개벽과 창조/우주변화의 원리 2017. 7. 18. 17:00

 

 

한의학자 한동석 선생(1911~1968)은 한의학계에는 널리 알려진 분이고, 역(易)에 통달한 분으로 미래를 내다보았다고 합니다. 이분의 예언은 송하비결처럼 체계적으로 전해져있는것은 아니고 언론에 의해서 공개된 일부분만을 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한동석의 예언이 최근에 빛을 발하고 있는데, 이 예언을 언론에 소개한것은 조용헌 원광대 교수인데 조선일보에 무슨 칼럼인가를 연재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 다만 한동석의 예언을 해석하면서 처음 이 예언을 들은 사촌동생인  한봉흠박사도 역학에 문외한이고, 언론에 소개한 조용헌교수도 무지하여서 그뜻을 제대로 해석을 하지 못하였기때문에 사람들의 안목에서 묻혀버렸습니다. 


이것을 2009년에 제 블로그 메모란에 비공개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서 또 향후 정국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예언인듯하여 재해석해서 들려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예언과 관련된 부분만 우선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글 내용은 조용헌교수의 칼럼 http://druking.com/memo/50072496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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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흠 교수가 본 한동석

 

 

한봉흠은 1960년대 초반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독문학 박사를 하였으며, 63년부터 93년까지 고려대 교수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하였다.한씨들 집안 내력인지는 몰라도 이 양반도 역시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박사는 사촌 형님인 한동석과는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주고받은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반드시 인터뷰해볼 만한 인물로 여겨졌다.

―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 좀 해 주시죠.

“내가 독일 유학을 갈 때가 1959년도인데 이승만 정권 때죠. 독일로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 형님이 그랬어요. ‘이기붕 집안은 총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이박사는 하야하고 마는데 난리 나서 갈팡질팡 할 것이다. 그 다음에 1년 정도 민주정부가 들어선다. 그 다음에는 군사독재가 시작된다.’ 독일에 있으면서 한국 정세를 보니 형님 말한 것이 전부 맞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형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귀를 쫑긋하고 들었죠. 1963년도에 귀국해 보니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 있더군요.

박정권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형님에게 물었더니, 육여사를 포함해서 부부간에 객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통령이 어떻게 객사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으니 ‘누군가가 장난하지 않겠니’ 하더군요. 총 맞아 죽을 수 있다고 그래요. 그리고 나서 1968년도에 형님은 죽었죠. 이 말을 머릿속에 담은 나는 1970년대에 고려대 총장을 지내던 김상협 씨와 단둘이 만나 식사할 때마다 ‘대통령은 총 맞아 죽는다’고 이야기하고는 했죠.

그 때가 유신치하라서 살벌한 시기인데, 대통령 총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를 대낮에 떠들어대니 김상협 씨가 놀라서 ‘한교수 제발 대통령 총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저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고는 했습니다. 저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 두들겨 맞기도 해서 박정권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총 맞아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 그밖에 다른 예언은 없었읍니까

“박대통령이 죽고 난 후에 정치적 혼란기가 다시 한번 오게 되는데, 이때에도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정치형세가 서너 번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정부 상태를 거친다는 거였죠. 그 다음에 군사독재가 한번 더 온다는 겁니다. 군사독재 다음에는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이 정권을 잡은 다음 금기(金氣)를 지닌 사람들이 한 10년 정도 정권을 잡는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금기를 지닌 사람들이란 양김(兩金) 씨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금기 다음 정권은 목기(木氣)와 화기(火氣)를 지닌 사람이 연합한다고 했습니다. 목기와 화기를 가진 연합 팀이 정권을 잡았을 때 비로소 남북이 통일된다는 것이죠.”

― 목기와 화기의 연합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죠?

“저도 그것은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목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어렴풋이 짐작되는데, 화기를 지닌 인물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대선이 끝나고 나서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 총리가 과연 누가 될 것인지를 주의 깊게 관망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목기와 화기를 지닌 사람이 연합해야 피를 안 흘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통일된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남북이 통일이 이루어질 때 남쪽이 80%, 북쪽이 20% 정도의 지분을 갖는 형태일 것이라고 했죠. 통일이 되려고 하면 남쪽에 약간 혼란이 있다고 했습니다.”

― 혼란이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범주까지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전쟁까지를 포함하는 의미입니까

“전쟁까지 갈 것라고는 이야기 안 했습니다. 그 대신 각종 종교·사회 단체 여기 저기서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사회가 혼란스러운 과정은 겪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 목기와 화기를 지닌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형님 지론에 의하면 대통령은 목·화 기운이 되는 것이 국가에 이롭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목·화는 밖으로 분출하는 형이어서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운이 밖으로 팽창한다는 것이죠. 반대로 금·수는 수렴형이어서 안으로 저장하고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내무부 장관이나 중앙정보부장 같은 자리는 금·수를 많이 가진 인물을 배치해야 하고, 상공부나 생산하는 분야는 목·화를 많이 가진 인물을 배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금융분야는 토기(土氣)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적당하다는 거죠. 금융은 양심적이고 공정해야 할 것 아닙니까. 토는 중립이어서 공정하죠. 이게 오행에 맞춘 인재 배치법이자 용병술이죠. 국가적인 차원의 인재 관리는 오행을 참고해야 한다는 게 형님 생각이었습니다.”

 

한박사에 의하면 한동석은 6·25를 보는 안목도 특이하였다. 음양오행적인 시각에서 6·25의 발발을 해석하였다. 한반도의 중앙을 가로지는 강은 한탄강인데, 한탄강 이북이 북한이고 이남이 남한이다.

오 행으로 보면 이북지역은 북방수(北方水)에 해당하고, 이남지역은 남방화(南方火)에 해당한다. 이북은 물이고 이남은 불이다. 그런데 소련의 상징이 백곰이다. 백곰은 차가운 얼음물에서 사는 동물이니 소련 역시 물이다. 중국은 상징동물이 용이다. 용은 물에서 노는 동물이어서 중국 역시 물로 본다. 이북도 물인데, 여기에 소련의 물과 중국의 물이 합해지니 홍수가 나서 남쪽으로 넘쳐 내려온 현상이 바로 6·25다.

대전은 들판이라서 그 홍수가 그냥 통과하고, 전주·광주도 역시 마찬가지로 통과하였다. 그러나 대구는 큰 언덕이어서 물이 내려가다 막혔다. 울산·마산은 모두 산이어서 물이 넘어가지 못했다. 부산은 불가마이니 물을 불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상도가 6·25의 피해를 덜 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밖의 예언을 간추려 보면 2010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임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니까 그 전에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딴따라’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 또한 그대로 되고 있다. 한동석은 1963년 1월부터 자신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생일, 생시인 6월8일(음력) 인시(寅時)에 닥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 생일, 생시를 넘긴다면 자신이 더 살 수 있을 것이나 아무래도 그것을 넘기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 는 스스로 본인의 이러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하여 계룡산으로 내려가 보기도 하였으나 결국 자신의 예견대로 6월8일 축시에 사망하였다. 2시간 정도만 견디면 인시를 넘길 수 있었으나 자신의 생시를 코앞에 두고 그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임종한 것이다.

가족문제도 그렇다. 생전에 본인이 죽고 난 뒤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거리에 나앉을 것이라며 대성통곡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본인의 임종후 가세가 기울어 인사동 집을 비롯한 가산을 팔고 가족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권경인. ‘한동석의 생애에 관한 연구’ 54쪽).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국토에도 변화가 생긴다고 보았다.

 

한반도 남쪽이 물에 잠기는 반면 서쪽 땅이 2배쯤 늘어난다고 예언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쪽지방이 물이 잠긴다는 말은 댐이 들어선다는 말이었고, 서쪽 땅이 2배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서해안에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는 것이 한박사의 술회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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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별왕과 소별왕의 수수께끼 내기

민족문화대학/우리나라 신화 2017. 7. 5. 17:51



(25) 대별왕과 소별왕의 수수께끼 내기


2005-05-12



신화속 화두, 풀 것인가 속일 것인가


제주도 창조신화 <천지왕본풀이>에는 천지왕의 아들 둘이 등장한다. 대별왕·소별왕 형제, 천지왕과 지상의 총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신들이다. 그런데 이들 형제는 창조된 세계를 누가 다스릴 것인가를 두고 다툰다. 이승과 저승 가운데 서로 이승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본토 창조신화에 보이는 미륵과 석가의 싸움(7회 참조)과 흡사하다. 그러나 제주도 신화에는 본토 신화에 없는 부분이 있다. 


<천지왕본풀이>에도 미륵과 석가처럼 대별왕과 소별왕의 꽃 피우기 시합이 있지만 그 전에 둘은 먼저 수수께끼 내기를 한다. 제주 말로 ‘예숙제낀다.’

















형인 대별왕이 묻는다. “어떤 나무는 주야 평생 이파리가 안 지고, 어떤 나무는 이파리가 지느냐?” “속이 여문 나무는 주야 평생 이파리가 안 지고, 속이 빈 나무는 주야 평생 이파리가 집니다.” 소별왕의 대답에 형은 틀렸다고 대답한다. “설운 동생아, 모르는 말 하지 마라. 청대와 갈대는 마디마디가 비어도 이파리가 안 진다.” 같은 방식의 수수께끼 문답이 한 번 더 되풀이된다.



대별왕=어떤 일로 동산의 풀은 자라지 못하여 짧고, 구렁의 풀은 잘 자라 길어지느냐?


소별왕=이삼사월 봄에 비가 오면서 동산의 흙이 구렁으로 가니 동산의 풀은 짧고 구렁의 풀은 키가 큽니다.


대별왕=설운 동생아, 모르는 말 하지 마라. 그러면 왜 사람의 머리는 길고 발등의 털은 짧으냐?


허실을 꿰뚫은 대별왕

경험적 사고에 머문 소별왕

창조세계 건 한판의 대결

지혜 아닌 속임수로 결판


대별왕은 수수께끼를 내는 신이고 소별왕은 그것을 풀어야 하는 신이다. 그런데 늘 수수께끼 시합에서 우위에 있는 자는 출제자다. 수수께끼는 상대편을 잡도록 계산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계산된 질문의 허를 찔러 수수께끼를 풀어야 참으로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지만 소별왕은 대별왕의 허를 찌르지 못한다.



소별왕은 경험적이고 일상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나무는 속이 꽉 차야 이파리가 튼실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봄비에 언덕의 흙이 씻겨 내려가 구렁에 쌓이니 기름진 구렁의 풀이 무성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나 대별왕의 수수께끼는 당연한 이치의 빈 곳을 공략한다. 단단하게 속이 찬 실(實)한 나무가 잎이 튼튼하고 열매(實)도 먹음직스러운 것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보면 자연에는 그런 이치를 거스르는 자연물도 있다는 것이다. 대별왕은 속이 텅 빈 대나무를 일례로 삼는다.




▲ 신화는 그 자체가 수수께끼의 일부다. 우리 땅 곳곳에는 그런 수수께끼들이 깃들어 있다. ‘구멍신화’의 원형이 담긴 제주도의 삼성혈.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천지왕본풀이>의 첫 번째 수수께끼 문답이 제기하는 허실(虛實) 문제는 간단치 않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촉발시키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신화적 사유를 철학의 언어로 바꾸어 놓은 <노자>의 잠언들이다.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검은 암컷이라고 한다. 검은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한다. 이어지고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이 죽지 않는 계곡의 신(谷神)을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텅 빔’(虛)으로 해석한다. 허야말로 여성적 원리이고 모든 것의 근원이며 영원하다는 것이다. 대별왕의 수수께끼 풀이는 노자의 잠언과 다를 바 없다. 소별왕은 자연의 실한 상태만을 보았지만 대별왕은 자연의 허한 지점까지 꿰뚫어 본 신이다. 허실의 두 이치를 통관해야 천지를 다스리는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수수께끼 풀이의 참뜻이다.


두 번째 수수께끼 역시 연장선에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두 번째 수수께끼에는 갑작스런 사고의 비약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와 달리 대별왕이 내놓은 답은 엉뚱하게도 대지의 풀에서 사람의 터럭으로 변환된다. 대별왕은 대지의 풀과 사람의 터럭을 동일시함으로써 경험적 사고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동일시를 우리는 은유라고 부른다. ‘머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이라고 묻고 ‘연기’라고 대답하는 수수께끼 문답 속에 작동하는 언어의 놀이가 바로 은유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수수께끼 언어의 본질인 은유를 적절히 보여 준다.





▲ ‘곰신화’가 머문 금강의 연미산,


그런데 이 은유를 유심히 들여다보노라면 18세기 조선의 철학적 화두였던 인물성론(人物性論)이 슬며시 떠오른다.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은 같은가, 다른가? 같다고 하든 다르다고 하든 거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어 이른바 호락(湖洛)논쟁으로 불이 붙었지만 <천지왕본풀이>의 대별왕에게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애초에 다를 수가 없다. 대지의 풀과 사람의 터럭이 같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물과 인간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한 두 번째 수수께끼 풀이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는 ‘나는 너다’, 혹은 ‘나는 풀이다’라는 깨달음, 곧 논리적 추론 너머에 있는 직관 안에서 솟아난다. <천지왕본풀이>의 두 번째 수수께끼에는 이런 지혜가 있어야 창조된 세계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신화의 논리가 숨어 있다.


창조신화의 이런 수수께끼 형식은 영웅신화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아마도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에 있는 돌 위 소나무 아래 내가 감춰둔 물건을 찾으라”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주몽이 부여를 떠나면서 미래의 아들에게 남긴 수수께끼다. 후레자식이라는 모욕을 당하고 돌아와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들은 유리는 산골짜기를 찾아 헤맨다. 수수께끼임을 깨닫지 못하고 소별왕처럼 지시적인 뜻만을 좇아 헛수고를 한 것이다. 유리는 고생 끝에 돌아와 자기 집 마루 기둥에서,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 따르면, ‘슬픈 소리’를 듣는다. 그때서야 깨달은 유리는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는 일곱 모가 난 돌을 일컫는 것이고, 돌 위의 소나무란 기둥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수수께끼를 수수께끼답게 푼 것이다.


칼의 슬픈 소리에 이끌려

영웅이 된 유리처럼

삼라만상에 깃든 신화 세계

지혜를 찾아 떠나봅시다


그런데 유리의 수수께끼 풀이 과정에서 놓칠 수 없는 대목이 ‘슬픈 소리’다. 이 소리가 없었다면 유리는 딜레마를 헤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고, 끝내 아버지를 만나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유리는 스스로 ‘지혜로운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소리의 도움, 다시 말해 주인을 만나지 못해 슬픈 소리를 내고 있는 부러진 칼의 도움으로 수수께끼를 푼 영웅이 된 셈이다.





▲ ‘창세신화’의 흔적이 녹아든 경북 안동의 제비원 석불.


그러면 유리를 영웅으로 만든 부러진 칼이란 무엇인가? 주지하듯이 유리는 이 칼을 들고 고구려로 가 주몽의 부러진 칼과 이를 맞춘다. 칼은 부자관계를 확인하는 신물(信物)이면서 동시에 신성한 왕권의 계승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인 것이다. 한데 부러진 칼들은 합체가 되면서 피를 흘린다. 이는 <제석본풀이>에서 아버지를 찾아간 삼형제와 아버지인 중이 손가락을 베어 은바릿대에서 피가 섞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관계를 확인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친자를 밝히는 방법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합체된 칼에서 흐르는 피는 왕권의 획득과 유지에 수반하는 폭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칼의 소리’를 통해 수수께끼를 풂으로써 증험된 유리의 지혜는 창조신화의 대별왕의 지혜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여기서 되돌아봐야 할 존재가 수수께끼 내기에서 진 소별왕이다. 그는 수수께끼 내기에서 지자 마지막으로 잠자면서 꽃 피우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한다. 본토 <창세가>에 등장하는 석가의 제안과 같다. 물론 소별왕은 이 내기에서도 꽃을 피우지 못해 패배자가 되지만 형을 속여 내기에서 이긴다. 소별왕은 부당한 방법으로 지혜로운 자를 저승으로 쫓아내고 이승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낙토(樂土)가 아니라 고토(苦土)가 되었다는 것이 우리 창조신화의 세계인식이다. 이 고토에서 유리는 칼이 부르는 슬픈 소리를 듣고 아버지의 수수께끼를 푼다. 칼의 유인을 당하고서야 수수께끼를 푼 유리, 수수께끼 내기에서 지자 속임수로 꽃을 피운 소별왕, 칼을 든 영웅과 사기꾼 창조신은 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신화 안에 제시된 수수께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것만이 수수께끼는 아니다. 신화 자체가 이미 수수께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누가 이 삼라만상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왔다고 말할 것인가?”라는 <리그베다>의 물음처럼, “현명한 거인이여, 땅과 저 위의 하늘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에다>의 신 오딘의 목숨을 건 질문처럼, 수수께끼 식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답변은 논리적 추론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예컨대 창조신이 하늘을 밀어 올려 천지를 만들고, 죽은 후에는 몸의 각 부분이 만물로 변형되었다는 식의 시적 이야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답변 자체가 또 다른 수수께끼가 된다. 그렇다. 신화는 우리에게 한판 수수께끼 내기를 하자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6개월여 동안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라는 이름을 내걸고 한판 수수께기 놀이를 벌였던 셈이다. 소별왕처럼 속이지 않고 이겼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지혜를 찾아 신화의 바다 속으로 긴 항해를 떠나야 하리라.<끝>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540.html#csidx3b039046546433e9766c4a0800fc3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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